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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지구라트 > 이집트 장제전
& 오벨리스크

미술사 스터디 10

by 이승희

미술사 스터디 10




수메르 지구라트 > 이집트 장제전


이집트는 미술의 특징은

그 규모가 거대하고 수량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규모적인 것은 사회 문화 체계가

양식화되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양식화된 것에서는 예술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 대신 양식화된 문화는 디자인이 발전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집트의 건축 디자인이다.

또 디자인이 발전한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그 양식성으로

회화나 서화나 도자기는 태생적으로 못 만든다.

그래서 일본의 판화가 유명하고

그 판화는 인상파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일본의 디자인 역량은 시각 디자인과

정원 디자인에서도 그 기량을 발휘한다.

정원 디자인이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자연미를 다 걷어낸 철저히 인위적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예술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이집트의 대표적인 양식 Pattern은

부조와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다 한쪽 방향으로 향해 서 있다.

이런 일률적이고 단순한 양식은

양산을 수훨하게 하는 장점은 있다.

그래서 이집트는 건축 디자인이 압도적이고

건축 양산 기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집트 건축미 단순 세련미의 대단함은

그들의 장제전에서 볼 수 있는데,

현재까지 건축사의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일 것이고

현대 건축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장제전의 기본 모티브는

수메르의 지구라트의 비스듬한 출입 통로와

치의 세로 스프라이트 선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지구라트의 벽면의 치가

기둥으로 바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둥 문화가 이집트에서 꽃 피운 것은

그늘이 필요한 더운 날씨의 영향일 것이고.


이 이집트의 병렬 기둥 양식은

후에 페르시아의 발코니 건축 양식과

그리스의 신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탄생한 대표적인 건축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궁전이다.




멘투호테프 2세 Mentuhotep II

(2061~2010 BC)


그는 이집트 제11왕조 가운데,

중 왕국의 파라오이다.

상하 이집트를 통일함으로써 중 왕국을 열었다.

멘투호테프라는 이름의 멘투 Mentu는

'테베의 전쟁신이 만족한다’는 뜻이다.

즉위 14년 아비도스 Abydos에서 일어난

반란의 진압을 시작으로 하여

즉위 39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티스, 아씨웃, 헤라클레오폴리스 등을 평정하여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51년의 치세 동안

외부로는 매우 공격적인 정치를 강행하고

내부로는 여러 제도를 정립하여 안정을 꾀했다.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멘투호테프 2세는

왕가의 계곡의 데이르 엘 바하리에

장제전을 짓게 했다.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은

구왕국의 피라미드에서 신왕국으로 이전하는

과도기 장묘건축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왕가의 계곡에서

어느 정도 원형을 유지한 유일한 장제전이며

550년 뒤에 축조된

유명한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모델이 되었다.

투트모세 3세도 그의 예를 따랐다.







위의 항공사진에서 보면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옆으로

더 거대한 스타일의 하트셉수트 장제전이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화면 캡처 2025-08-24 225922.png







신전의 왼편에 보이는 (A)는

멘투호테프 2세 신전이며

그 뒤편으로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B)에

투트모세 3세의 신전 흔적이 남아있다.

이들을 모두 아울러서

북쪽 사원 Monastery of the North라고 부른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멀리서 보면 단일체 3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항공촬영 사진을 보면 단면적이 매우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3층 구조의 각 층은 기둥이 줄지어 선

주랑(柱廊)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은 단독으로 2, 3층은 병행구조로 되어 있고

3층 안쪽에 지성소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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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 Obelisk는

고대 그리스어 오벨리스코스에서 왔다.

이집트어로는 테케누 tekhenu라고 불렸다고 한다.

끝이 사각뿔인 피라미드 형태의 사각기둥을 말한다.




투트모세 1세의 오벨리스크, 이집트 룩소르




사전에는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태양 신앙을 상징으로 세웠던

거대 기념비의 일종이나

다산의 상징이라고 말하는데,

형태적 의미를 몰라서

후세 학자들이 만들어낸 추측에 불과하다.


그 형태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창조된 세계와

창조 이전의 고요 내지는 평강, 평안이라고

일컫는 신의 세계가 있다.

창조는 한 점 소리가 나는 파동의 빛인

에너지로 이뤄졌다.

그래서 진리를 구조적으로 말하자면,

신의 세계화 창조된 에너지의 세계이다.


사각뿔은

내부에 수축해 들어가 도달하는

창조의 한 점을 넘어선 신의 세계를 의미한다.

고요를 그 이상 표현할 방도는 없고

그것이 최선인 것이다.


사각뿔과 연결된 기둥은

에너지가 밑에서 올라와 사각뿔에 도달해야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오벨리스크는

신과 에너지가 모두 표현된

상징성 도안의 최선의 형태인 것이다.




여하튼,

인류 문화에서 가장 단순하고 정갈한 진리 디자인을

형상화해서 모뉴먼트로 만들었다는 면에서

이집트가 해낸 모든 문화의 정수가

이 오벨리스크가 아닌가 싶다.


이집트가 이 모뉴먼트의 정수인

오벨리스크를 개발하게 된 것은

종교적인 깊이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태고대 선인류 시대에 조성된

수많은 바위 모뉴먼트의 영향에 의해서

일 수도 있다.

선인류 바위 문화에선

그 형태가 사각뿔과 사각기둥이 아니라

둥근 공과 둥근기둥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산에 바위를 조성할 때는

X 문양을 조각해 넣기도 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중왕국 시대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후 파라오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 탑문 앞에 한 쌍이 건립되었다.

오벨리스크의 원리가

한국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동네 어귀마다 있었던 솟대와 유사하다 하겠다.




오벨리스크의 수탈사


오벨리스크는

로마 제국 시절과 같이 고대에

이미 유럽으로 옮겨져 있던 것도 많다.

서구인들은 오벨리스크를

정신의 산물로 보지 않고

유물로만 치부하고 소유하려고 했다.


이집트가 과거에 자의적으로

해당 국가들에게 선물로 보내준 것들 중

하나가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이다.

무함마드 알리가 친선관계 도모용으로

루이 필리프 1세에게 선물로 내준 것이다.

답례품으로 프랑스에게서 대형 기계식 시계를

1846년에 받았다.

3천 년이 넘어도 변함없는 위대한 보물을

겨우 10년도 못 가 고장 나는 고철덩어리와

바꾸고 만 것이다.


아래는 이집트 밖에 반출된 오벨리스크 위치이다.


이탈리아 로마 13개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 1개

영국 런던 템스 강변 1개(클레오파트라의 바늘)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 1개(클레오파트라의 바늘)

튀르키예 이스탄불 1개

로마에 있던 악숨 오벨리스크 1기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며

오벨리스크를 모방하여

새로 새워진 탑들도 등장한다.

미국의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 있는

워싱턴 기념탑이나

보스턴의 벙커힐 기념탑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오벨리스크가 그들이다.




워싱턴 기념탑탑





보스턴의 벙커힐 기념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벨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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