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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 바빌로니아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미술사 스터디 11

by 이승희

미술사 스터디 11




수메르 영역




수메르 > 바빌로니아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수메르 Sumer는 12 환국 중 한 일파로

기원전 6,000년기 혹은 기원전 5, 000년에

동쪽 환국에서 온 고대 문명이다.

수메르 문명 Sumerian civilization이

가장 융성했던 때는

기원전 3 천년대로,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이 1000년 기간을

다음과 같은 세 시대로 구분한다.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2900년~2350년),

아카드 왕조 시대(기원전 2350년~2150년),

우르 제3왕조 시대(기원전 2150년~2000년)





이집트 유적 지도




초기에 수메르의 영향을 받은

이집트 왕조의 역사는 약 3,000년으로

길고도 좀 복잡하다.


1. 선왕조 ( ~ 기원전 3150년)

2. 이집트 초기 왕조

3. 이집트 고왕국

(기원전 2686년 ~ 기원전 2181년)

4. 이집트 제1중간기

(기원전 2181년 ~ 기원전 2055/2040년)

5. 이집트 중왕국

(기원전 2055/2040년 ~ 기원전 1802년)

6. 이집트 제2중간기

(기원전 1802년 ~ 기원전 1550년)

7. 이집트 신왕국

(기원전 1550년 ~ 기원전 1077년)

8. 이집트 제3중간기

(기원전 1077년 ~ 기원전 664년)

9. 이집트 말기 왕조

(기원전 664년 ~ 기원전 332년)




바빌로니아


고대 바빌로니아(기원전 약 1895년경 ~ 기원전 1595년)

아모리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해 바빌론 중심의 왕국을 세운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함무라비가 활동하며 법전을 제정했다.


카사이트 왕조(기원전 1595년부터 약 440년가량)

바빌론은 "카르두니아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신바빌로니아 시기(기원전 626년경 ~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에 정복당할 때까지로,

나보폴라사르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통치 시기가 포함된다.

이 때 바빌론의 유명한 건축물과 공중정원 등이 건설되었다.


바빌로니아 초기 도시는 기원전 2200년대경부터 존재했으나,

바빌로니아 왕국 형성은 기원전 19세기 경이며,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메소포타미아와 근동 지역을 강력히 지배한 시기였다.



수메르가 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사막화되기 전에는 두 개의 강을 끼고 있어서

무역이 발달하고 융성한 문명이 꽃피웠던 곳이다.


수메르를 이어 바빌로니아가 부상한다.

많은 이들이 탐욕과 죄악의 도시하면

고대 바빌론을 꼽는다.

이는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포로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이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바빌론은

우상숭배가 팽배하며 물질이 넘쳐나는

세속적 유혹으로 가득한 환락의 도시였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바빌론을 큰 음녀로 묘사하며

심판의 날에 철저히 파괴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바빌론은

타락한 도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다.


하나의 도시가 대도시로 커지게 되면,

폭력, 성병, 마약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결국 바빌론이란 딱지가 붙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런던은

지저분하고 치안이 불안정하고

거지와 매춘부가 넘쳐나는 대도시였는데

이에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당대 시인들은

런던을 바빌론 같은 곳이라고 칭한다.


바빌론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1899년 이라크에서 그 실제 흔적이 발견되며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적 바빌론을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바빌론은 고대 서아시아의 중심 도시로서

오랫동안 지식과 예술

그리고 사회체계와 법률을 공급하는

문명의 배터리 역할을 했다.

바빌론은 고대인들에게

신성한 도시로 여겨졌다.


이 외에도 히포크라테스는

바빌론 학자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의술 활동을 했고

기원전 460년경,

헤로도토스는 직접 바빌론을 방문해

그 장대함에 있어

바빌론을 능가하는 도시는 없다 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 유대인들의 묘사대로

성적으로 방종하고 사치스러웠으며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도시인 것도 맞다.




바빌로니아가

처음부터 잘 나갔던 도시는 아니었다.

수메르 문명이 쇠퇴하고

메소포타미아에 여러 세력이 난립할 때

아모르인들이 서쪽 레반트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다.

기원전 1875년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산 것이

바빌론의 시작이다.

바빌론은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쥐 죽은 듯 살다가

기원전 1,792년

불세출의 왕 함무라비가 즉위하고부터

대도시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함무라비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후

고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왕국을 존속한다.

그때 바빌론은 잘 짜여진 행정체계와 법률

그리고 마루둑 신을 중심으로

고도의 영적 도시로서 자리메김하게 된다.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기원전 626년 ~ 기원전 539년)


아시리아 주요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초기 아시리아: 약 기원전 2600년~2025년경.

고아시리아: 기원전 2025년~1364년경.

중아시리아: 기원전 1363년~912년경.

신아시리아: 기원전 911년~609년경.

제국 후기: 기원전 609년~서기 240년경


이후에는 소아시아와 이란 북부 등지에 남은 아시리아 부족이 명맥을 유지한다.

이 시기 동안 아시리아는 초기에는 도시국가에서 시작해,

중·신아시리아 시대에 메소포타미아와 근동을 지배하는 강력한 제국이 되었다.

신아시리아 제국은 세계 최초로 메소포타미아, 레반트, 이집트까지 통일한

대제국으로 평가받는다.




고바빌로니아가 멸망한 후에도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로서의

영향력을 잃지 않는다.

고바빌로니아 멸망 후 천 년 뒤

신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왕국이 재개된다.

문화적인 힘을 오랜동안 품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신아시리아 세력이 바빌론을

직간접적으로 통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잔혹하기로 소문난 아시리아는

다른 점령 지역을 초토화시켰던 것과는 달리

바빌론만은 존중하며 관대하게 대했다.

오히려 바빌로니아인들이

지배자인 아시리아인들을 하찮은 존재로 봤다.

바빌론은 명성과 거룩한 문명의 근원인 반면,

아시리아는 변방의 무식쟁이들의

그냥 힘만 센 민족이라고 생각한 거다.

그 때문에 바빌론에서는

끊임없는 독립투쟁이 일어난다.

심지어 아시리아에서 바빌론에 왕으로 임명한

샤마시 쉬무르마저도 바빌론에 동화되어

반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 오랜 투쟁이 쌓이고 쌓인 끝에

바빌로니아인들은 신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만다.









신바빌로니아(기원전 626년 ~ 기원전 539년)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그룹은 오랜동안 이 지역에서 살았던

수메르인, 아카드인, 아모리인이었으며,

다른 한 그룹은

기원전 12세기 바다 민족을 피해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반트 지역에서

이주한 외부인들이었다.

이 외부인 그룹에는 칼데아인들이 속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신바빌로니아를 세우는데

주축이 된 사람들이다.

칼데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정착해

어업과 농경 그리고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이들은 워낙 적응력이 뛰어나다 보니

바빌론식 이름을 쓰고 종교와 법률을 받아들였다.

바빌로니아인으로 동화된 칼데아인들은

기원전 700년부터 바빌론 왕을 다수 배출한다.

그런 칼데아인이기에 신아시리아인들이

바빌론을 통치하자 분노가 극에 치달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 칼데아인들을 주축으로 한

독립 투쟁이 전개된다.

마침내 기원전 662년

아시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룬

제국 지도자가 사망 후 아시리아 세력이 약해지자

칼데아인인 우르크 총독 나보폴라사르가

재빨리 바빌론을 정복한다.

그리고 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로부터

독립했음을 선포한다.

이때 세워진 왕국을 칼데아 바빌로니아

또는 신바빌로니아라고 부른다.


나보폴라사르는 신바빌로니아 왕으로 즉위한다.

나보폴라사르의 출신은 불분명하다.

비문에서 그는 자신을

마르 라 맘마나(아무도 아닌 자의 아들)라고

칭하는데,

이는 다른 메소포타미아 왕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묘사이다.

신아시리아 왕

신샤리쉬쿤(재위 기원전 627~612년)의 편지는

나보폴라사르를

"하해(下海) 출신",

즉 메소포타미아 최남단 출신으로 묘사한다.


이후 나보포라사르는 메디아와 손 잡고

기원전 609년에 아시리아를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바빌론에서 발견된 나보폴라사르의 점토 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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