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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Dec 25. 2019

왕가위/화양연화5
In The Mood For Love

핵심 예술가

22. 

핵심 예술가

홍콩 - 왕가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 5





[불확실성의 미학]


삶이 예술인 친구 중에 이 영화를 

열 번 정도 봤다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왜 그랬을까?

좋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경우는 있지만

열 번은 특이하다.

지루하지 않고 깊이가 있는 영화나 

볼 때마다 위로가 되는 영화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한편, 미학 쪽에서 

다른 해답을  따로 구할 수 있다.

'불확실한 미' 때문이다.

이 영화는 장르가 멜로 영화이지만

내용이 일반적인 멜로와 같이 

짐작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에 

내용에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인간 마음은 

심리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만났을 때

궁금해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 플롯 작업을 할 때 

작가들이 궁금증을 유발하게 끔 

구성을 한다.

연속극일 경우에는 

그것을 더 심하게 대놓고 한다.

다음 주에 또 보도록 관객을 유도하려고

중요한 순간에 끝을 안 내고 

다음 편으로 넘기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이 영화는 도대체 연애를 할똥말똥한

소심한 주인공 둘을 고용해 

내용을 전개하면서

사람 속을 궁금해 미치도록 만든다.

이 영화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이별 연습을 하고 난 후 

사랑의 감정을 표출한 여인은

택시 안에서 남자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오늘은 안 들어갈래요."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전에 거절했던 손 터치를 받아들인다.

관객은 

그날 그녀가 진짜 안 들어갔는지를 모른다.

영화 내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관객 책임도 아니건만 

보는 이들은 왜 그랬는 지를 

규명하고자 영화를 

거듭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관객은 감독의 교묘한 장치에 말려들어 

오리무중의 상황으로 

마침내 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연극계에서는

전문 용어로 '부조리 연극'이라고도 한다.

'관객 모독' 제목의 연극도 있었다.

연극 내용이 부조리해서 

생각과 다른 모욕감을 맛보았는데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막이 내려간다.

관객은 그 후에도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것이 확실한 것을 찾고자 하는 

인간 마음 심리이다.

연극은 끝났건만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연극이 계속된다.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한 많은 경우가 있어왔고

긴 여운을 주는 예술의 기법이라 해서

미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이라 정의하고

'불확실한 미'의 존재를 인정하며

'불확실성의 미학'을 탄생시켰다.





인생은 어차피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순간순간 미학이 존재한다는 

타당성이 있다.

이렇듯 불확실성의 미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

그래서 매 순간 현재를 바라볼 수 있다면

불확실한 존재를 간파할 수 있다고 본다.

불확실한 현재의 매 순간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불확실한 순간순간에 미가 있기에...



어차피 불확실한 현실이다.

그 현실의 미를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정 다가올 현실을 

바라는 대로 만들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만들어지는 구조를 알고 

수를 쓰면 된다.



현실은 잠재의식에서 저장된 

여러 소스들의 조합으로 엮겨져 

필연적으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펼쳐진다.

그걸 알면, 

잠재의식에 원하는 소스를 제공함으로써

바라는 현실이 만들어져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바라는 것을 상상해서 소스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것을 잠재의식에 실행시키는 방법은

강하게 명령을 하는 것이다.

잠재의식은 머리가 없기에

세게 명령하면 자동적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가 현재의식의 위치에서 

필요한 것은 '의지'이다.



본인의 의지가 약한데

정 이루고 싶다면

초의식의 의지를 빌리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원리로 알든 모르든

경험의 결과에 입각해

종교적으로 기도나 기원을 하는 것이리라.


이제 이치를 알았으니

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몫이고 자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지 의지를 갖고 살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불확실성의 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점이

그러니까 자포자기를 해도 된다는 생각이 되기에 

오히려 해방감 줄 수도 있다는 것.

완벽주의자 경향이 있는 인간형에게는

포기가

진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불확실성과 완벽성의 공존!

서로 상생되니까.





"오늘은 안 들어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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