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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갑골문

미술사 스터디 17

by 이승희


미술사 스터디 17
은나라 갑골문




황하 문명(기원전 약 3000년경 시작)

중국 황하(黄河) 강 유역에서 발생한 고대 문명으로,
신석기 시대 유적과 문화 등을 거쳐 발전한다.
기록에서는 고조선과 하나라가 이 문명의 초기 단계로 언급되나,
고고학적으로는 상나라가 황하 문명을 대표하는 왕조로 인정받고 있다.

황하 문명은 농경과 목축, 청동기 사용, 갑골문자의 발달,
중앙집권적 왕조 체제를 특징으로 하며,
동양 고대사의 근원으로 평가된다.



고조선(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

환인 환국과 환웅 배달국을 적통으로 이은 동이족의 나라이다.
2,225년간 존속한 나라이다.


하나라 夏朝(기원전 2070년경 ~ 기원전 1600년)
화하족(華夏族)이 세운 최초의 국가로 전설상의 나라이다.
우(禹)임금이 건국해 걸왕이 폭정으로 상나라에 의해 멸망한
약 470년간 존속하며 중국 최초의 세습 왕조로 평가되지만,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해 논란이 있다.
상나라(은나라)에 멸망당하였고, 상나라 이후 주나라가 이를 계승한다.

화하족은 황제 헌원씨와 염제 신농씨와 태호 복희씨의 후손으로 자처하나,
그들은 모두 동이족이 후손으로 밝혀졌다.


상(商)나라(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046년)

동이족의 나라로 탕왕(湯王)이 건국해 주나라에 의해 멸망한
약 550년~600년 가까이 존속한 왕조이다.
수도를 은(殷)으로 옮긴 이후 ‘은나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주나라(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주나라는 약 790년간 존속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장기간 지속된 왕조이다.
수도의 이동에 따라
서주(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와
동주(기원전 770년~기원전 256년)로 구분한다.

서주는 현재 시안 부근인 호경을 수도로,
동주는 낙양을 수도로 삼았다.
동주는 춘추전국시대로 불릴 만큼
외부 침입과 내분으로 세력이 약화된 시기였다.



상(은)나라 갑골문


은허 출토 갑골문자




갑골문은
1899년 베이징의 한 약재상에서 한약재 속의 '용골'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금석학자 왕일로의 추적 끝에 약 3,000년 전 상나라 왕실의 유적인
허난성 안양시 은허에서 발굴되었다.

갑골문은 동북아시아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의 전신으로,
주로 거북이의 배딱지(갑)와 짐승의 견갑골(골)에 새긴 문자이다.
주로 궁중에서 점을 치고 그 결과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
갑골문은 점을 치는 과정에서 만든 기록으로,
하늘에 미래의 일을 갑골문으로 묻고
구멍을 뚫고 열을 가해 생긴 금이 간 모양을 해석하여 답을 얻었다.
갑골문자는 한자의 기원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16만 점 이상 발굴되어 약 천 자가 해독되었다.

1976년 하남성 안양에서 발굴된 은허에서
갑골문과 청동기와 옥기와 제사 흔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유물들은 요하와 산동의 동이 문화의 것이었다.
갑골문과 유물들의 발굴에 의해, 한자도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중국 학자 왕국유는 이미 1959년에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일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발굴 이후 최근에는 중국의 많은 학자들도 인정하게 되었다.



제신 홍도관(붉은 도자기 항아리)







한국인이 1992년 만주 심양과 조양 중간의 부신이란 곳에서
붉은 항아리를 골동품상에게 구입한다.
한국에 가져와서 한국인끼리 소유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최종 구입자가 대전 골동품 감정가에게 의뢰한다.
감정가는 이 골동품 상부에 파여 쓰여진 61자가 갑골문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해독을 해냈다고 한다.

홍도관 갑골문 내용은 상나라 주왕이 하늘에 묻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상나라 주왕과 주나라 문왕이 되는 서백전과의 목야대전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은허에서 출토된 15만 점의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도자기에 세겨진 갑골문은 드물 뿐 아니라 상태가 좋은 유물은
보기 어렵다.



은나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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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시대의 백도




백도
은나라의 토기의 주류는 회도(灰陶)인데
이는 흑도와 거의 동일한 수법에 의한 것으로서,
다만 그슬리는 방법이 적어서 회색으로 구워냈다.
대부분이 대형 가마에서의 제조로
다소 크고 무거운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기형에 당당하고 힘찬 데가 있다.

제기적(祭器的)인 것 중에는 흑도도 있고
또한 순백의 도토(陶土)를 사용한 '백도(白陶)'도 있다.
백도는 은의 토기를 대표하는 것이라 한다.



회유도
회(灰)를 물에 녹인 것을 기면(器面)에 바르거나
또는 회와 진흙을 섞은 것(유약)을 기면에 칠해서,
반들반들한 유리질로 도기를 싼 것을 회유도(灰釉陶)라고 부르는 것이다.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는 기술이
이미 은나라 때 개발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은나라 시대에 시작된 이 회유도야말로 후일의 청자의 선구로서,
대륙의 도자사(陶磁史)는 여기서부터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다.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는 기술이

이미 은나라 때 개발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의 같은 시기에 속하는 산둥반도의 고조선 토기에서도

표면이 미끈하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아

고조선도 유약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은나라의 위치가 산둥반도보다 더 내륙에 옆에 있었으니,

이미 대륙 황하 일대와 산둥반도는

동이족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산둥반도 고조선 토기



은나라 시대 토기의 작풍은

서주에서 춘추전국, 다시 한대 이후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나

토기의 기술적인 발전은 은주(殷周)시대에 정점에까지 도달하고

그 후는 양식의 변화에만 머물고 있다 하겠다.





주나라 유물


주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은 청동기와 옥기이다.

특히, 상나라의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성격이 강했던 청동기와 달리,

주나라의 청동기는 예악을 중시하는 정치 이념을 반영하며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또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옥기의 제작 기술도 매우 정교했다.




서주의 청동기, 기원전 1000년 경





동이족의 아메리카 이주 기원

아메리카는 알라스카 에스키모들은 러시아의 에스키모들과 같다.
베링해가 붙어 있던 시기에 베링 지역을 거쳐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주가 시작된 것은
세계 인류 학자들에 의하면 기원전 20,000년부터라고 추정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안은 동이족이 이주해 형성된 것은
그들의 지명이나 민요가
고대의 동이족 언어로 만들어졌였음이 파악되어 왔다.
인디안이 아시아에서 건너 왔을 것을
처음으로 얘기한 학자는 프랑스 학자 조젭 드 기뉴였다.
그후 19세기 독일의 인류학자 요한 프리드히 불루멘바흐도
그 비슷한 얘기를 했다.
영국의 공자를 번역한 멜터 메드허스트도
주나라 무왕에 쫒겨 아메리카로 도망을 온 상(은)나라 군인들이
바로 인디안 조상들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그 결정적인 증거들이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베링해를 형성하는 알래스카 쪽 수어드 반도에서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은 집터 유적에서
배달국 시대인 기원전 3;400년 전 청동기 유물을 발견한다.



동이족의 나라 은나라(상나라)에서
뉴멕시코로의 이주

미국 학자 존 A. 러스캠프가 2005년부터
미국의 암각화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가 발견한 암각화들 중에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들 중 태갑이라는 왕의 이름도 나온다.
태갑왕(太甲)은 은나라 탕왕(成湯)의 손자이자 제3대 군주로,
대체적인 재위 시기는 기원전 약 1536년경~기원전 1506년경이다.
왕의 명칭은 왕의 사후에 그의 치적과 성향에 따라 정해지니,
태갑왕 대에 은나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면,
암각화에 태갑왕 이름이 새겨진 것은
어림잡아 기원전 1,500년 즈음으로 보면 되겠다




기원전 1,500년 때의 은나라 갑골문이 새겨진 암각화,

미국 뉴멕시코주 암각화국립기념지,
은나라 3대 왕 태갑의 갑골문 명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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