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부터 내던 아버지, 결핍이 만든 언어
돈이든 시간이든 배움이든, 가진 자는 여유롭다.
몇 해 전, 친구가 굉장히 부자 집안의 애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애인이 입는 티셔츠 가격은 본인의 월급 수준이다.
덕분에 직장은 취미생활처럼 다니고 있었다.
"그 정도 부자면 싸가지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른바 싸가지 없는 재벌 2세를 떠올렸는데,
친구는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남자 친구도 그렇고 그 친구들도 만나보면 다들 착해. 화를 낼 일이 없더라.
다 자기 것인데, 굳이 바락바락 소리 지를 필요가 없는 거지"
몇 년 전, 친정 식구들이 모여 점심을 먹은 날이 있었다.
요리는 힘드니 배달을 시켰다.
그런데 이상했다.
깐쇼새우 대 사이즈를 시켰는데 새우가 네 마리뿐이었다.
아버지는 얼굴이 시뻘게지며 소리쳤다.
"새우 네 개 주면서 몇 만원을 받아? 장사를 왜 이따위로 해?"
나는 침착하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깐쇼새우 대 사이즈를 시켰는데 새우가 네 마리밖에 없네요. 혹시 잘못 나온 건가요?"
옆에서 아버지는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제대로 따져! 돈을 이렇게 받아놓고 양은 왜 이래?"
통화하는 내 옆에서 소리 지르는 아버지 때문에 사장님 말을 겨우 들었다.
"어이쿠, 죄송해요. 작은 사이즈로 잘못 나갔네요. 다시 보내드릴게요"
이를 옆에서 지켜본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이것 봐, 차분히 말해도 알아듣잖아. 당신은 왜 꼭 화부터 내?"
아버지 표정이 멍했다. 혼잣말이 들렸다.
"…저렇게 말해도 되는구나"
깐쇼새우 사건은 그날 바로 잊혔다.
먹느라 바빴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은행에 갔을 때,
이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버지는 직원에게 바쁘다고 재촉하고
사은품을 더 달라 보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 내가 어릴 때도 늘 저랬지…'
아버지는 내게 늘 꼰대 같았다. 성격은 급했고, 쉽게 버럭 했다.
아버지는 본인의 성격은 어린 시절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아버지는 태어나기 3일 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에게 버려졌다.
부모 얼굴도 몰랐다.
집도, 학교도 못 다녔다.
매일 굶었다.
몇 달 묵은 친척집에서는 맨바닥에 밥그릇과 숟가락만 던져줬다고 한다.
더 서러웠던 것은 그 친척집 아들은 바로 옆에서
밥상 위에 잘 차려진 밥과 고기반찬을 먹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하지만 이 사연을 핑계로 매일같이 화내는
아버지의 고성을 들으며
살았던 나와 내 동생은 항상 조마조마했다.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고 가족에게
욱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중국집 배달사건에서
아버지의 혼잣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삶이 화를 내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가시를 세우고
억척스럽게 달려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형편이 나아졌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결핍의 언어로 세상을 대한다.
억척스럽게 화부터 내고, 재촉하고, 보채며 산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릴 적 배고플 걱정도 없었고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도 다닌다.
화내지 않아도, 차분히 말해도, 사람들은 친절히 설명해 준다.
사회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30대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할 수 있고
누군가 나를 친절히 대해주는 것이
마음의 여유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학교를 다녔고 직장을 다녔다.
그래서 배움과 사회생활이라는 자산을 갖게 됐다.
(누군가는 이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
그리고 그 여유를 물려준 건, 바로 아버지였다.
그런데 내가 감히 아버지를 '꼰대'라 부를 수 있을까.
아버지를 꼰대라 생각했던 내 젊은 날이 조금은 후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