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저녁, 거리에서 만난 냄새

by 문애




이른 저녁. 은행 ATM기에 갈 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은행이 있는 학원가는 검은 패딩을 입은 중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들을 피해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옆을 보니 죽집. 막 나온 죽에서 풍기는 깨가루, 김가루, 참기름의 냄새였다. 찬공기에 섞인 이 냄새에 왜 마음이 흐뭇해지지?


좋아하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에는 삼치를 구웠는데, 저녁 나절 집에 구운 삼치의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 냄새도 어찌나 좋던지. TV를 보며, 책을 읽으며, 모로 씨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맛있게 먹은 삼치의 여운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상한가. 뭐, 이런 취향도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는 다 다르다. 모로 씨는 장작 타는 냄새를 좋아한다. 세제 냄새를 좋아하는 조카는 어릴 때부터 수건을 꼭 챙겨 다닌다. 수건을 코에 대는 게 버릇이다. 후배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빵 냄새를 맡으면 행복해져요.” 맞다. 갓 구운 빵 냄새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아무리 꽁꽁 언 마음도 사르르 녹인다. 예전 살던 동네에 좋아하던 카페가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빵 내음이 버선발로 달려나와 손님을 반겼다. 그곳에서는 바게트며 치아바타며 버터가 듬뿍 든 스콘 같은 빵들을 직접 구웠다. 모로 씨는 “이 집은 환기가 안 되네요”라며 불평했지만 나는 그 냄새를 사랑했다. 빵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는 순간, 사소한 걱정 하나 끼어들 틈 없이 행복해졌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귤을 한 상자 샀다. 나 때문에 환풍기도 안 틀고 삼치 구운 냄새를 참아준 모로 씨에게 귤을 까서 줘야지. 귤 깔 때 나는 냄새는 또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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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까고 난 다음 손가락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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