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끝의 맥주 한 잔, 이게 아니면 무슨 재미로?

by 문애


무심코 맥주를 마시다가 깜짝 놀랐다. 아, 맥주 때문에 비뇨기과까지 다녀오고선 또 마시고 있구나. (비뇨기과라니. 비뇨기과는 전립선에 문제 있는 남자들이나 가는 줄 알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자다 깨서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는 게 문제였을 뿐.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많게는 다섯 번도 깼다. 이쯤 되면 병이었다. 원인은 알만했다. 밤마다 마시는 맥주와 안주로 먹는 감자칩이 범인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뇨기과에 간 건 모로 씨의 권유, 그리고 최근 받은 소변검사에서 검출된 높은 백혈구 수치 때문이었다. 대체 백혈구 수치가 왜 그렇게 치솟은 걸까. 그걸 알아내 치료하면, 맥주를 마시고도 자다가 한 번쯤만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비뇨기과에 갔다.


환자는 나 빼고 다 할아버지들이었다. 비뇨기과는 전립선에 문제 있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내 짐작은 편견이 아니라 현상을 꿰뚫어본 것이었다. 심지어 의사마저 여든 넘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의사는 나를 환자가 아니라 적적하던 차에 마침 잘 만난 말동무처럼 대했다. 아니, 그보다는 스탠딩코미디 무대에 선 코미디언에 가까웠다. 나는 닥치고 들어야 하는 관객이었다. 관객은 소리내 웃을 수야 있지. 나는 소리를 내려고 하면 저지를 당했다.

“선생님, 근데 백혈구 수치가 왜 이렇게……”

“약은 안 돼. 저 밖에 있는 할아버지들처럼 돼. 한 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한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이것 좀 보세요.” (건강검진결과지를 들이밀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맥주를 마시지 마. 정 내 삶의 낙이 맥주다, 싶으면 마시고.”

나는 끝내 높은 백혈구 수치가 무슨 의미인지,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저 당장 몸에 이상이 없으면 약을 먹을 필요가 없으며, 맥주를 끊으라는 권고를 들었을 뿐이다.


그날 밤에는 맥주를 안 마셨다. 자다 깨서 화장실에 두 번 갔다. 그래, 이참에 맥주를 끊어 봐?


그러고선 며칠 안 가 마트에서 맥주를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곧 진정하고는 내친김에 대용량 감자칩까지 집어들었다.


맥주가 내 삶의 낙인가. 정녕? 몇 초도 못 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다. 맥주를 마시는 건 즐겁다. 첫 모금을 꿀떡꿀떡 넘길 때 목구멍을 스치는 짜릿함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함도 좋다. 그 맛에 마음이 풀어져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도 좋다. 맥주를 마시는 순간에는 어쩐지 더 소리 높여 깔깔깔 웃게 된다. 그래, 맥주가 나의 낙이라면 화장실 가는 것쯤이야. 무언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거지. 맥주를 마시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거다. 맥주 먹고 화장실에 안 가려는 심보는 욕심이다. 그래, 욕심 부리지 말자. 대신 삶의 낙을 즐기자.


이제 비뇨기과에 다시는 가지 말자.




top-view-delicious-snacks-beer.jpg 거품이 좀 더 풍성한 맥주가 좋다. 감자칩은 예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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