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성의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을 재밌게 읽었다. 책에는 전유성 씨가 후배 개그맨에게 해주는 조언이 등장한다. 그 개그맨은 믹서기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방송계에 느림보 같은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괴롭다. 일을 그만둬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런 후배에게 전유성 씨는 이런 말을 해준다.
“느리면 더 느리게 해봐. 이게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엔 느려야 더 빛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개편 시즌이었고, 내가 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될 예정이라 옮겨갈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 사정을 알게 된 선배가 전화로 코치도 해주었지만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때 담당 피디로부터 떨어진 이유를 듣게 됐다. “우린 질펀한 원고를 원했는데, 너무 단정하더라고.”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단정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단점이 아니었다. 마치 똥을 방 안에 놓으면 악취 풍기는 오물이지만, 밭에 뿌리면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하듯이. 단지 내 글이 그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때는 내 안에 내가 모르는 특성 - 예를 들면 질펀함 같은 - 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책 팟캐스트를 듣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을 덜컥 산 것도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테스트 결과는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익히 파악하고 있는 나. 그 외에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수 시와의 <새 이름을 갖고 싶어>라는 노래를 알게 됐을 때, 주문처럼 따라 불렀다. “갖고 싶어. 새로운 이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때로 나라는 한계가 갑갑할 때가 있다. 훌쩍 뛰어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나는 나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이런 나를 평생 잘 토닥이며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걸. 전유성 씨의 말이 맞다. 느려야 더 빛나는 사람이 있듯이 단정해야 더 빛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느리면 더 느리게, 단정하면 더 단정하게. 나도 그게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