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작은 옷이 싫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전에 급한 사정이 생겨 동생 바지를 빌려 입었다. 사이즈가 작았다. 같이 살 때는 동생이나 나나 풍채가 좋은 편이라 네 옷 내 옷 가리지 않고 입어도 잘 맞았는데, 이제는 동생이 살이 많이 빠졌나보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동생이 그랬다. “이제 빨래한 바지를 입을 때 앉았다 일어났다 안 해도 돼.” 이게 무슨 말인지는 풍채 좋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여전히 풍채 좋은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쫀쫀한 바지의 짜임을 조금씩 늘려보았다.
허나 소용 없었다. 하루종일 쪼이는 바지를 입고 있자니 고문 받는 느낌이었다. 결국 예정된 스케줄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방으로 후다닥 달려가서는 바지를 벗어던지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 역시 편한 게 최고다.
불편해도 멋을 부리던 시절이 있었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했다가 발 뒤꿈치가 까지기도 했다. 스키니진을 입고 나갔다가 바지 가랑이가 찢어져서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박음질을 하기도 했다.(그 당시 나는 외출할 때 반짇고리를 꼭 챙겨다녔다.)
이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불편한 신발을 신는 일도, 꽉 끼는 옷을 입는 일도 없다. 몸이 편하면 마음도 편하고 태도가 자연스러워진다. 맵시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요즘 입는 잠옷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원래는 내 것이 아니었다. 동생이 모로 씨에게 선물해준 무인양품 잠옷인데, 남자용이며 사이즈는 XL다. 추위에 취약한 모로 씨는 결혼 전부터 입어온 고정 잠옷이 있는 터라 한동안 그 잠옷은 방치돼 있었다. 나는 잘 때는 꼭 잠옷를 입는데, 낡은 내 잠옷를 교체해야 하나 고심하던 중 그 잠옷이 생각나 입어봤다. 선녀의 날개옷이 이랬을까. 아이 둘을 양손에 안아도 훨훨 날아 날아갈 듯 편안했다.
한 번 편한 맛을 보고 나니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여성용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앞으로 잠옷은 남성용 XL로 살 생각이다. 온몸을 감싸주는 이 넉넉함! 이 편안함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