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여행, 그리고 뜻밖의 비상사태

이뿔싸, 너무 많이 먹었나

by 문애

엄마랑 둘이 간 안동여행의 마지막 날. 헛제사밥, 숯불갈비, 크림치즈빵 등등. 너무 많이 먹었나. 신호가 왔다. 급히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 물 색깔이 이상하다. 물을 내려보니, 아뿔싸. 안 내려간다. 비상이다! 어떡하지. 머리를 굴려본다. 호텔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가 떠오른다. 그래, 물건을 고르는 척하다가 잠시 화장실 좀 쓸 수 있냐고 물어보자.


나는 엉거주춤 그러나 태연한 척 기념품 가게로 향한다. 가게는 한산하고, 직원은 화사하게 웃으며 먼저 온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호오, 안동 맥주! 일단, 일을 본 다음에 찬찬히 한 번 둘러봐야겠군. 계산을 마친 직원이 나에게 다가온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나는 똥줄이 타지만 애써 최대한 침착하게 묻는다.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갑자기 직원의 얼굴이 돌변한다. 여기서 거절당하면 안 되는데. 벼랑 끝에 한 손으로 매달린 심정이 된다. “어머, 어쩌죠? 화장실이 고장인데.” 호텔 전체 화장실이 고장이란다. 내가 난감해하자 눈치 빠른 직원이 말한다. “급하세요?” “네, 좀.” “그럼, 일 보세요.” “네?” 놀란 나는 목소리가 세 배쯤 커진다. 직원은 “일 보시고, 뚜껑 살짝 덮고 나오세요. 제가 처리할게요.”라며 눈을 찡긋한다. 직원은 흔쾌히 화장실 문까지 열어줄 기세다. 고맙고 고맙지만 그럴 수야 있나. 나는 안동맥주만 두 병 사들고 기념품 가게를 나왔다.


허어, 이제 어디로?

갈 데 없는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결연하게 변기에 앉았다. 어쩔 수 없다. 내 일은 내가 처리해야지. 거사를 치르고 혹시나 싶어 변기 레버를 내려봤다. 그런데, 그런데! 물이 내려갔다. 하아, 로또에라도 당첨된 기분! 이런 행운이 찾아온 건 기념품 가게 직원 덕분 아니었을까. 집에 돌아와 안동 맥주를 마시며 지장보살이 환생한 듯 자비롭던 직원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306142640_758958918417622_6603827468122909498_n.jpg 그나저나 안동맥주, 정말 맛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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