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산 메이드 인 차이나, 이 라벨을 확?

by 문애


“야사시이 센세(친절한 선생님)" 일본어 수업 첫 시간에 은지 상은 그렇게 자기 소개를 했다. 은지 상은 중학교 불어 선생님인데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잘 웃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분위기에 맞는 화제를 적절히 꺼내놓는다.


오늘 수업에서는 옷을 입다, 모자를 쓰다, 목도리를 두르다 같은 표현을 배웠다. 은지 상이 말했다. “고노 마후라와 프랑스데 카이마시따(이 목도리는 프랑스에서 샀습니다)." 그러자 영수 상이 눈썹을 실룩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영수 상은 회사원으로 퇴직 후 일본 여행이 꿈인데, 코미디언 뺨치게 웃긴 표정을 잘 짓는다.

“메이드 인 차이나 데스까(중국산입니까)?"

은지 상은 여유 있게 웃으며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목도리의 라벨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데스(중국산이에요)."

순간 모든 수강생들이 빵 터졌다. 웃음이 가라앉자 은지 상은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라벨을 보여주며 말했다. “확 잘라버려?” 나는 그저 웃을 뿐, 수업이 계속되어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은지 상 목도리가 생각났다. 은지 상이 목도리 라벨을 정말 잘라버리려나?

동생의 신혼 가구를 만들어준 목수가 그랬다. “살면서 가구에 나는 작은 자국들이 다 추억이 될 거예요.” 작은 흠, 보기 안 좋은 자국이라도 생긴 걸 없애려고 하지 말고, 가능하면 즐거운 추억으로 삼으며 살고 싶다. 예전에 무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게 있다. 무를 무답게 만드는 건 무하면 떠올리는 연둣빛이나 흰빛이 아니라 표면의 패임이나 시들어가는 꼭지나 흙자국이라는 것.


은지 상이 라벨을 자르지 않았겠지. 아, 자르지 않았길. 은지 상이 주위 사람들한테 이 얘기를 해주며 친절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KakaoTalk_20250302_222300574.jpg 시든 꼭지와 패임, 그것도 무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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