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었던 해물칼국수집에 갔다. 해물칼국수 2인분을 시키는데, 손님 두 명이 들어왔다. 젊은 시절 배우 유퉁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남자와 그의 아내인 듯한 조금 까칠해 보이는 여자. 유퉁 씨는 주방으로 가서 주인아주머니한테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둠 칼국수 주세요, 모둠. 전 많이는 못 먹으니까, 양은 적게 주시고요.” 유퉁 씨 아내가 툴툴 댔다. “그냥 해물로 해도 되는데.” 유퉁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야, 모둠으로 해. 모둠 주세요, 모둠.” 유퉁 씨 아내가 말했다. “뭐 크게 다르려고?” 직원 말로는 모둠에는 낙지, 게, 새우가 들어간다고 했다.
결국 모둠을 주문한 유퉁 씨 부부는 우리 뒤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칼국수가 나오길 기다리며 테이블 한 편에 놓인 자그마한 김칫독에서 겉절이랑 무생채를 푸는데, 뒤쪽에서 허밍 소리가 들려왔다. 유퉁 씨였다. 가게에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였다. 내 또래인가? 아니, 좀 연식이 있어 보였는데. 생각해 보니 어느새 나도 연식이 있었다. 그래, 초등학생 듣던 노래인데 어언 삼십… 년이 넘었다. (헉)
피아노 연주는 이어졌다. 토이의 <네가 나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 전람회의 <취중진담>..... 유퉁 씨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해물칼국수 집에서 난데없이 유퉁의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다음 곡은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노래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유퉁 씨의 감정도 클라이맥스였다.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며어언 훠어어어. 언젠가 그대 돌아오겠죠. 내게로오. 후우우우” 아내를 앞에 두고 누굴 생각하며 부르는지 모르겠으나 유퉁 씨는 다음 가사로 휘몰아쳐갔다. “난 믿을 거예요, 눈물 모아아” 그런데 피아노 연주가 끊겼다. 연주자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걸까. 당황한 유퉁 씨는 그제야 깊은 감정에서 빠져나온 듯했다. 까칠한 유퉁 씨 아내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유퉁 씨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난 믿을 거예요, 눈물 모아아”
이제 우리 테이블에도, 유퉁 씨 부부 테이블에도 해물 칼국수가 놓였다. 노랫소리 대신 후루룩, 후루룩 소리가 났다. 유퉁 씨는 모르겠지. 나도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는 걸. 모로 씨한테 물었다. “노래 불렀어요?” 모로 씨가 말없이 웃었다. 손님으로 가득 찬 칼국수집을 둘러보니 연배가 우리랑 비슷한 듯했다. 그럼 유퉁 씨가 노래 부를 때 다들 같이 불렀을지도 몰랐다. 속으로만 소리 없이. 유퉁 씨의 작은 음악회와 내적 떼창이 함께한 해물 칼국수집의 어느 오후였다.
그나저나 해물칼국수 맛있었다. 다음에는 모둠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