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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원 Jul 18. 2024

⑩벌에 대차게 쏘인 날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오도이촌 텃밭러에게 시골에서의 1박2일은 ‘습격작전’이나 마찬가지다.

장맛비를 맞아 풀이 얼마나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조금만 뽑아도 탑을 쌓을 수 있다. 사진=김효원

차에서 내려 짐을 들고 마당에 들어서면서 재빨리 마당과 텃밭 상태를 스캔한다. 파쇄석을 뚫고 풀들이 창궐했고, 호두나무는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을듯하다. 상추나 가지에는 하얀 벌레가 잔뜩 붙어있고 고랑마다 풀이 가득하다.


짐을 내려놓고 농사 모자와 목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는 선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나서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마당에서 눈에 보이는 풀을 처삼촌 벌초하듯 대충 뽑으면서 텃밭으로 진격한다.


하루에도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남아풍 장마’ 아래서 풀은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 먹고 춤추고 노래했다. 한 마디로 개판, 아니 풀판이었다. 한번 밭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는 ‘그린홀’이다.


6월에는 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뿌리까지 정성껏 뽑았다면, 7월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풀뿌리가 굵고 깊어 풀 하나를 잡고 낑낑대다가는 진도를  뺄 수가 없다. 서서 풀을 절단하는 선호미로 줄기를 끊어주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적을 전멸하겠다고 꼼꼼함을 발휘했다가는 밭고랑 지박령 신세를 못 면한다.


무릎까지 자란 풀을 얼추 처단하고 선호미를 놓기 위해 연장을 보관해두는 처마 밑을 갔을 때 벌집이 눈에 들어왔다. 라면 박스에 주먹만 한 집을 지어놓고는 여덟마리쯤 되는 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등 색깔이 진한 걸로 봐서는 말벌이었지만 크기는 말벌보다는 작았다. 벌도 작겠다, 벌집 크기도 작으니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때의 나를 업고 튀고 싶다.


만만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선호미를 들어 벌집을 냅다 때렸다. 벌집은 쉽게 떨어져 박스 바닥으로 떨어졌다.


벌집이 박스 안으로 굴러떨어지자 집을 잃은 벌들이 우왕좌왕했다. 벌집을 찾아 태워야지 하며 선호미를 박스로 가져가려던 찰나였다. 안절부절하는 벌들 사이에 군계일학 벌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곤충이나 동물의 언어를 인간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희한하게도 벌이 눈빛으로 나에게 욕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노려본 벌이 그대로 나에게 돌진해 내 손등을 사정없이 쐈다.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쐈는데, 통증의 크기를 숫자로 표현하자면 9쯤 됐다.


“아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나마 벌이 한 마리만 날아와 한 번만 쏜 것을 고맙다고 해야 할까.


벌은 나를 공격한 후 그대로 돌아서 제집의 상태를 살피러 날아갔다.


이제야 생각건대 그 벌은 군인 직급임이 분명하다. 주먹만 한 벌집에 붙어있던 벌들은 벌집을 공격받자 대부분 어리둥절 벌집을 찾아 헤맨 것과 달리 이 벌 한 마리만은 적을 정확히 찾아 따끔하게 응징했다는 점에서다.


벌의 기억력이 궁금해진 것도 난생처음이다. 군인 벌이 내 얼굴을 기억할 것 같아 그 후로는 연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한 달 때쯤이면 잊어버릴까. 평생 기억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침을 빼고 소독한 후 퉁퉁 부어오른 손목을 부여잡고 ‘말벌에게 쏘였을 때’를 검색하노라니, 한산섬 달 밝은 밤 이순신 못지않게 처량했다.


벌에 쏘이면 한 시간 이내에 쇼크가 올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글을 읽으며 한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한 시간 동안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1년 넘게 고민하고 있는 안마의자를 사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들을 했다.


나중에 5촌 아재네 마실 가서 말씀 드리니 “그거 말벌 아니여. 바다리벌이여. 말벌이 쏘면 그 정도로 안 끝나. 말벌이 을매나 독하다구” 하셨다.


이번 습격작전은 바다리 장군의 일격에 대패로 돌아갔다. 말벌집이 보이면 무조건 119에 신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절반의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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