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술학원

애들 다 재워 놓고 글 씁니다만

글쓰기 위한 전 작업

by 오아팸

글쓰기 할 때 쓰기를 위한 전 작업이 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역시 시간 확보가 되지 않으면 다 부질 없는 준비일 때가 많다.

글이 술술 풀릴 땐 시간 제약을 덜 받지만, 보통은

자리에 앉는다 - 유튜브 하나 본다 - 음악 스타트 - 음료 마신다 - 멍 때린다 - 몇 자 적어 본다 - 자료 찾는다 - 다시 멍 때리기 하고 나서야 글 쓰기로 들어선다. 운이 좋아 글이 쭉쭉 나 갈 땐 모르지만, 어느새 이런 과정을 루틴처럼 따른다. 그 운이 좋은 날이란 영감이 떠오른 날이다. 또는 종일 가슴에 품고 있던 글감과 어울리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고, 한 두 문장으로 가슴의 글이 정리될 때인데 흔치가 않다.

영감, 말 그대로 삘이 왔을 땐 물들어 왔을 때 노 젓는 심정으로 자판을 패들 삼아 앞으로 아래로 써 내려간다. 하지만 십에 일곱여덟은 앞서 말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시간을 살펴보면 세 시간 중 글 쓴 시간이 삼십 분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머지 시간엔 그냥 그렇게 앉아만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엔 이 시간이 아깝고 뭐가 그리 불안한지 한쪽 다리을 분당 팔십에서 백회 정도 떨며 뭐라도 읽고 보고 쓴 걸 고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게 사실 나는 마지막 삼십 분을 쓰기 위해 그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니,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세 시간 전체를 하나의 과정, 통으로 보고 있다. 결국엔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나오리라는 기대감으로 글을 쓰기 위한 전 작업을 엉덩이로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 시간을 갖기 위한 방법은 아이들이 잠든 시간밖에 없다. 미라클 모닝이라도 해서 가질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지만, 육아를 시작하고 저절로 시작된 미라클 모닝이라 굳이 안 해도 됐고 사실 이 기적의 시간은 육아란 기적의 시간으로 대치된 지 오래라 글쓰기엔 적절치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나름 찾은 시간대가 바로 애들 다 지워 놓고 갖는 이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완전히 보장된 시간은 아니다. 운 좋게 아이들이 깨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서만 가능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런 귀한 시간이 내겐 더 짠 것만 같다. (통으로의) 세시 간 한번 깨지면 회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글 쓰는 과정이 연속되지 못하면 다시 시작하거나 그날 글쓰기를 그냥 접어버릴 때도 있다.

왜 이어서는 써지지 않는 걸까? 고민이 깊었다. 그러다 찾은 이유가 글의 전체 맥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세 시간을 통으로 보다 보니 그 과정 전체가 한 덩어리고 끊기면 두 덩어리가 되는 걸 참지 못했다. 또 소설처럼 한 부분만 발췌하면 맥이 끊기듯 한 과정이 온전하다 할 수 없었다. 물론 나만 느끼는 까칠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귀중한 시간이 방해받았다고 짜증 나거나 화가 나진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게 되는데 이런 자세나 태도는 내가 글을 쓰면서 변한 모습 하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글쓰기가 알게 한 것 같다. 난 마치 글튜버가 된 것다. 유튜버처럼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모든 상황을 기록하는 브이로그처럼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영상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처럼 나도 내 안에 감정, 내 밖의 상황들을 마음의 서랍에 잘 정리해 둬야지 한다. 나중에 글감으로 써먹을 때가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밤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인 동시에 불안한 시간이다. 행복과 불안의 공존 아래 엉덩이 붙이고 있으면 참 별 생각이 다 든다. 소설을 읽은 것도 영화를 본 것도 아닌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내일 밤은 어떤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지 궁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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