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술학원

용기낸 배려와 요청사이

배려의 요청이 실패할 지라도

by 오아팸

출퇴근 80분, 5일이면 400분, 한 달이면 1600분..

약 26시간을 지하철에서 그것도 대부분은 서서 보낸다. 가끔 운이 좋아 앉을 때도 있는데 주위에 임신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 어떤 이유에서든 앉아야 하는 사람을 찾고.. 있을 땐 얼른 자리를 내어 준다.

(차라리 계속 서있지 앉아서는..) 굳이 주위를 돌아보며 앉아야 할 사람을 찾는 이유는 현명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리 양보하면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걸까?..
“자리 양보와 현명하게 사는 게 뭔 상관?..”

현명하게 사는 것이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이다.
난 지난 글에서 ‘누구나 임산부 배려석 하나쯤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고 스스로 말하고 기록했기에 자리 양보는 곧 현명하게 살기 위한 행동 중 하나가 된다.

그런데 가끔 현명하게 좀 살아 보겠다는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다. 바로 스스로 시야를 좁혀 버린 사람들이다.

지하철을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승역에 도착하면 자리가 많이 생기는데.. 출근 시간대엔 사람이 많아 서있던 앞자리에 자리가 나면 바로 그 자리에 앉는 수 밖에 없다.

이제 내 앞사람이 일어서고 앉으려는 순간..
나는 아랑곳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사람이 내 앞으로 엉덩이를 45도로 내밀더니 ‘쿵’ 앉아 버린다.

아니.. 이건 상도덕처럼 특히, 지하철에선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법칙? 규칙? 조항?.. 뭐든.. ‘내 앞자리가 비고 내릴게 아니면 내가 앉을자리 아닌가?..’ 발끈하게 된다. 무례한 것에 배려는 돼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다.

앞에 자리가 생겨 앉았는데 재빨리 먼저 앉은 사람 무릎에 앉은 이야기..
자리 맡으려 가방?을 던졌다는 사람..
밀치고 먼저 타선 “이라와! 여기 자리 있어” 하는 사람..
노약자석이 노인 전용석인 줄 아는 사람..
임산부 배려석에 배알이 꼴린 사람..

사람들 많은데 목소리 내어 “여기 앉으세요!”하는 배려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배려를 요청하는 것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그냥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용기 내어 리퀘스트해야 한다.

어쩌면 눈치 없이 내 앞자리에 앉아 ‘이제 됐다’는 표정으로 ‘자리 상도덕’을 무너뜨린? 사람이 한 마디만 했어도 기분 좋게 내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내가 뿜는 레이저를 맞지 않아도 됐을 거다. “제가 좀 앉아도 될까요?” 이 한마디를 사람들은 정말 어렵게 생각한다.

미안한 마음으로 용기 내어 한 배려의 요청을 쉽게 거절할 사람은 아직까진 없다. (그래! 있기도 하지만..) 아직 배려가 가능한 사람이 세상엔 더 많다. 그래서 “아직은 살만 한 세상이다!” 가끔이지만 한 번씩 듣는 게 아닐까?..

지오를 푸시카에 태워 마트로 향한다. 날은 또 왜 이리 더운지.. 오고 가는 몇 분 거리에 우유가 상할까 봐 보냉백도 준비하는 유난을 떨며 어서 시원한 에어컨 속으로 들어간다.

바삐 우유 두 개를 들고 제일 짧아 보이는 계산 줄에 섰는데 푸시카 때문인지 앞사람과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된다. ‘이거 좋은데..’

앞사람 물건이 캐셔 쪽으로 옮겨가고 이제 내 차례..
슬쩍 손에 한 두 개 물건을 든 사람이 새치기를 하며 물건을 벨트에 놓는다.


“저기.. 저 줄 선 건데요!”
“...”


아무런 대답 없이 캐셔를 지나 물건 받는 쪽으로 선다.
나도 아무 말 없이 벨트 쪽으로 푸시카를 밀어 넣고 슬쩍 새치기당한 물건을 벨트 끝 쪽으로 옮기고 우유를 놓는다.

바코드를 찍으려는 캐셔가 우유를 들더니 새치기한 사람에게 “이게 전부 맞으시죠?” 묻길래
“네. 맞아요. 제 우유예요” 대신 답한다.

그때서야 눈에 힘을 주며 우릴 보는 새치기한! 사람..
- 아주머니.. 몇 번을 불렀는데 그냥 제 앞으로 가시더라고요.”
- 아..! 못 들었어요.”
- 네에.. 못 들으셨구나..

차분히 또박또박 눈을 뚜러져라 웃는 얼굴로 묻는다.
튀어나오는 까칠함을 붙잡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포인트 먼저 눌러주세요 “ 하는 캐셔 말을 뒤로 하고
아주 천천히 우유 두 개를 푸시카로 옮기곤
”포인트는 안 할 거고요. 주차도 필요 없습니다. “
그리고 아주 천천히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단말기에 넣는다.

“급한 마음에 그랬나 봐요.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냥 ‘먼저 계산해도 될까요?’

물어보셨으면 됐을 텐데..”

배려는 눈치 보는 것이다!
(눈치 : 남의 마음(상태)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낼 수 있는 것을 말함.)
이 눈치를 보려면 시야를 넓혀 사람을 봐야 하고 얼굴을 봐야 하고 눈을 봐야 한다.


스스로 좁혀버린 시야를 넓혀 주위를 돌아봐야 한다.
주위에 나보다 앉아야 할 사람은 없는지.. 지금 내민 엉덩이가 맞는 엉덩인지.. 지금 선 줄 뒤에 누군 없는지 “지금 줄 서신 거예요? “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용기 내어 리퀘스트하면 된다.


”제가 좀 앉아도 될까요?, 제가 먼저 계산해도 될까요? “

물론 거절당하면 무안하겠지만.. 무안보다.. 그게 매너라는 것이기에 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All I ever really need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로버트 폴검) ’ 긴 제목의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 중엔 이 배려와 매너들도 다수! 포함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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