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카페, 그리고 마인드카페

#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갈수록 예뻐지는 사주예요.”


홍대 부근 사주카페. 지긋한 사장님이 노트에 펜을 휙휙 그으며 말문을 뗐다. 상상도 못 한 인트로에 나는 그만 마시던 얼그레이 티를 뱉고 말았다. 감.. 감사합니다? 어쩐지 쑥스러워 한자로 가득한 이면지를 바라보는데, 사장님이 물었다. “혹시 직장 옮길 생각 있어요?” 고민하고 있는 분야가 있었다면 올해 한번 시도해봐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였다. 아뇨. 저는 이제 좀 정착할래요. 그리고 저는 결혼에 대해 여쭤봤는데요? 그러니 바로 입장이 달라지는 사장님.


“새로운 사람일 수 있어요. 환경을 바꿔봐요. 소개받는 거 싫어하는 사주이긴 한데, 누가 소개해준다고 하면 만나보고.” 순간, 어머니인 줄 알았다. 어머니가 많이 하시는 말씀인데.. 그리고 예전의 나, 그러니까 20대 초중반의 나였다면 몰라도 지금의 나는 처음 부서이동해 온 팀장님에게도 ‘내년에 결혼 예정인데 남편이 없으니 소개 좀 해달라’고 말하는 염치 불고한 인간이었다. 반쯤은 진심이고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어차피 재미로 보는 거. 조금 안 맞는 거 같아도 계속 들어봤다. 한 샤머니즘 한다는 내가 여러 곳 다녀봤지만, 시간 지나고 보면 ‘그때 그 말이 맞았네!’ 한 곳이 이곳뿐이어서.


“올해 만나게 되는 사람 잘 봐. 만나면 빨리 결혼하는 걸 추천하고 싶네. 내년 정도?”

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애인복’은 없지만 결혼해서는 헤어지는 것 없이 잘 살 거라고. 그간의 내 걱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었다. 이 정도 연애 가지고도 이별이 이렇게 힘든데, 내가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혼이 두려워서. 이혼하게 되면 얼마나 힘들까 상상만 해도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게 되는 사람과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니. 정말 믿고 싶은 말이었다. 사장님은 어쩐지 나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속상한 말을 던졌다.


“자기보다 큰 사람은 아니야.” 큰 사람이 아니라니? 나보다 어리다고 했다. 근데 그게 연령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나보다 여러모로 부족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릇 같은 거? 그 말을 듣는데, 아뿔싸…. 그런 거구나. 아니, 재미로 본다면서 이렇게 과몰입한 사람 누구죠? 변명하자면 정말.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10년도 더 전부터. 나보다 그릇 큰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이 사람은 아닌 거 같아. 그런 말을 정말 달고 살았는데. 나는 끝끝내 그런 사람은 만나지 못하는 것인가! 근데 그럴 것도 같은 게 문제.. 나는 도대체 뭐 얼마나 큰 그릇(?)을 가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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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20여분을 더 나의 결혼에 대해 봐주셨다. 나는 벌컥벌컥 얼그레이를 들이켜가며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히 들었다. 4년 전, 취업운을 봐주십사 찾아갔을 때에도 들었던 내용도 있었다. 음양오행 중 ‘금’이 많은 사주라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지만, ‘나무’가 적어 벨 것이 없다는 이야기. 나무를 많이 베면 그것이 곧 재물인데, 좋은 도구는 있으나 심어져 있는 것이 없어 벨 것도 많지 않다는. 예전에는 '나중에 재테크를 하게 되거든 꼭 부동산을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그에 더불어 시댁의 재산이 곧 나무가 될 것이리라고 예언해주셨다. 세상에, 저 부잣집에 시집가는 건가요?


“여인천하 집안이야. 그 집은 시어머니 말로 굴러가.”

“앗, 그러면 제가 힘든 거 아닌가요?”

“아니.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곳간 열쇠를 줄 거야.”


곳간 열쇠! 세상에. 입을 틀어막았다. 배려와 인품이 나온다는 그곳이요? 당장 아무도 없으면서 내가 갖게 될 곳간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지 들뜨고 말았다. 사장님은 내가 결혼해서 더욱 잘 살 사주이며, 남편은 조금 모자란 듯하나 내 얘기라면 껌뻑 죽고, 장모에게도 매우 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야, 그게 어떻게 그릇이 작은 거야. 그 정도면 대용량이야!


동행한 친구에게도 장렬한 키워드 몇 가지를 남기고, 사장님은 쿨하게 다른 테이블로 떠났다. 우리는 이미 음료를 다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상담이 종료되자마자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경의선 숲길을 걸으며 키워드를 곱씹었다. 박장대소하면서. 재미로 본 것이었지만, 정말 눈앞에 닥친 일처럼 맛깔나게 설명해주신 덕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았다. 눈앞의 실연과 시련은 모두 모래처럼 작고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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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님,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그리고 며칠 전. 평일 오후 5시. 합격 소식을 받아 든 취업준비생처럼 잔뜩 긴장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모니터에 띄워둔 숲길 사진을 아스라이 바라보면서 떠듬떠듬 말했다. 전화상담은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제휴해준 덕에 무료로 상담 몇 번을 받을 수 있었다. 한번 이용해봐야지 마음먹었지만, 적절한 상황이 없어 이용해 보지 못하다가, 최근 탐색하고 싶은 것이 생겨 예약했다.


어떤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든
한껏 웅크린 여린 숨에는
버림받았다는 마음뿐


아이폰 최근 메모에 담긴 말. 실제로 어떤 끝내주는 하루를 보냈든 잠들기 직전에는 버림받았다는 감각에 몸서리치면서 잠들었다. 최근의 실연으로 인하여. 10년 치 일기를 확인하는 작업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버림받았다’는 키워드들. 자주 쓰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왜 그런 느낌을 받는 걸까? 왜 그럼 느낌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까? 이태원에서 칵테일을 마실 때, 한강 뷰 카페에서 커피 마실 때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너네도 헤어질 때 그렇게 느껴?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아니. 차이는 입장이라도 ‘그렇게까지’ 느끼진 않았단다. 근데 왜 나는? 그럼 왜 나는?


친구들은 몇 가지 해석을 내놓았지만, 내 마음에 썩 와닿진 않았다. 일전에 ‘징징거린다’는 키워드에서 내 역사를 읽어낸 상담 선생님이 계셨다. 난 그 상담 이후로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게 되었고, 다음부터 힘든 일을 표현하는 데 개의치 않게 되었다. 이번 ‘버림받았다’는 키워드에서도 내가 성장할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이번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고 싶었다. 상담비는 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금 비싸다는 인식이 있기 마련. 나 또한 그러했던 찰나, 회사 제휴처가 생각났고, 약간 어색함에도 나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어 전화상담을 신청했던 것이었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일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진 기분.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그런 장면이 떠올라요.”


“어쩌면 내담자님이 어릴 때부터 강하게 느꼈던 감정, 그때 느낀 외로움까지 같이 끌어올리는 걸 수 있어요.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파고드는 거죠.”


아무도 없는 방. 혼자. 어두움. 익숙하긴 했다. 외로움. 내겐 언제나 익숙한 단어였는데, 몇 년 전부터 내 사전에 없는 단어가 되었다. 외로움을 극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서, 내가 껴안고 가는 평소 감정이 되어서 사라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며칠 전에 했었다. 그러고는 몇 시간을 울었다. 내가 생일마다 혼자 여행을 떠난 건 외로워서였구나. 조용한 술집에서 혼자 책 읽으며 술 마시는 게 가능했던 것도, 혼자 하는 여행이 최고라 생각했던 것도 결국은 다 외로워서였구나.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항구 앞 밤바다에 앉아 줄 이어폰으로 친구와 음악을 나눠 듣던 여중생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그렇지만, 내담자님은 과거의 사건들에서 극복이 많이 된 것으로 보여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나 또한 너무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에 “맞아요!” 외쳤다. 내겐 밝은 친구들이 있었고, 좋은 술과 시간들이 있었다. 또 몇 번의 값진 상담들과 좋은 싸움이 가능했던 연애, 몇 번의 극복 경험들이 있었다.


“그리고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당연히 상처가 되죠. 그렇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 감정은 아니에요.” 주변의 누군가 ‘그렇게까지’ 느끼진 않았다 할지라도 내가 느낀 감정을 문제 시 하는 게 아니라 수용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무기력증이 있지만, 일종의 애정 결핍도 있어서 애착 관계에는 애정을 강하게 요구하게 되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강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고. 애정 결핍이란 단어는 누구나 들으면 흠칫하게 되는 단어지만, 선생님의 온화한 설명으로 들으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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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상담받는 것을 싫어한다. 본인에게 얘기하면 되지 않냐고. 왜 굳이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개인적인 치부를 털어놓느냐고. 그리고 항상 덧붙인다.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렇지만 막상 엄마는 분기별로 사주, 역술인을 찾아가 점을 본다. 언제 운이 트인다더라, 너는 센 직업을 가진 남자랑 결혼해야 한다더라. 그런 말을 꼭 전해주시곤 한다. 나는 그것 역시 엄마만의 상담 방식이라 생각한다. 내가 사주카페에 가 들은 얘기로 위안받았던 것처럼. 엄마는 샤머니즘 전문가의 위엄을 빌려 하루하루의 시름을 내려놓은 것이겠지.


나는 꾸준히 상담받고 있다. 예술치료부터 심리상담, 정신과까지. 그때그때 필요에 맞게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보고, 지인들에게 팁도 준다. 항상 ‘강한 사람’이고자 했던 나는, 누구에게든 “나 요즘 힘드니 좀 도와달라”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감정이 상했을 때 '당신의 이러이러한 행동으로 나는 이러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라고 차분히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일까? 혼란형 애착 유형에서 안정형 애착 유형이 되었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나로서는 최고의 보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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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상담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그 사람들한테 상처받은 사람들이 정신과에 온다’는 말이 있다. 금쪽 상담소에 열광하고, 오은영 박사 팬덤마저 생긴 요즘. 이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진로 상담, 학부모 상담 같은 것 말고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받는다면. 스스로에 대해 통찰하고 모든 감정을 수용하며 산다면 조금은 안정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또 이런 식으로 글을 끝맺고 싶진 않았는데. 샤머니즘 테라피와 전문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내내 생각난 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부정적인 표현을 못하는 사람. 참는 것이 익숙하고 내가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누구에게도 힘든 얘기일랑 하지 못하고 늦은 밤 홀로 어두운 방에서 독주를 털어 넣는 사람. 새벽 2시, 공원에서 몸을 떨며 흐느끼던 나의 그도 언젠가는 과거의 사건을 극복하게 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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