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여단본부가 근무지였다. 후반기 교육을 마친 신병들은 여단본부에서 2박3일 동안 교육을 마친 후 예하부대로 배속됐고, 여단본부에는 이 신병 교육 담당 보직을 맡은 병사가 두 명 있었다.
나와 몇 동기는 저 둘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석식 후 인솔을 했다는 이유로 시간 외 근무 가점을 받아갔기 때문이다. 아니 신병 교육하는 게 자기 일인데, 저녁 시간에 했다고 가점을 가져간다고? 내 혈세가 줄줄 새는 기분이었다. 물론 상황병, 부관병, 정훈병 등 흉본 우리 역시 연장근무에 대한 휴가는 잘만 챙겨갔다.
그 벌을 지금 받나보다. 포괄임금제의 노예가 되었다. 일이 많아 퇴근을 못해도 어떤 보상 하나 주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할 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도록 노트북과 핸드폰 배터리를 빵빵하게 충전해놔야한다. 아무리 그날 머리를 싸잡고 일해도, 경쟁업체 퍼포먼스가 더 높으면 나는 일을 안 한 게 된다.
웹서핑 하다보면 이 짤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은 비슷한 압박감을 요즘 느끼고 있다. 어느덧 부서 배치를 받은지 한 달이 되었고 슬슬 업무가 주어졌다. 문제는 아직 내가 걸음마를 뗄까말까 하는 수준이라는 것. 전임자의 인수인계? 그런 거 없다. 나름 이것저것 찾아보며 어찌저찌 문서를 완성해보지만 나부터가 맘에 들지 않는다.
도처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순간 궁지에 몰린 듯한 압박감을 받는다. 내가 일을 잘 못해 우리 회사 명예가 실추되고, 대중의 외면을 받아 거리로 나앉게 되는 건 아닌가. 실수한 건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다음엔 잘해야겠단 마음으로 일거리 아닌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온다. 자나깨나 일 생각인 셈. 분명 자아에서 직장인 송사리를 밀어내야겠다 다짐했건만, 일요일이 되니 다시 가슴 한켬이 답답해진다. 딱 일주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해야 하는 날의 기분.
지금 다니는 곳은 송사리의 네 번째 직장이다. 그것도 신입으로만.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여러번 나왔던 이유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탓이다. 내가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갈 확신.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내부에선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부터 나는 알고 싶었다. 보람을 느낄 부분을 찾아야 나부터 능동적으로 일을 할 테니까. 하지만 월급주는 회사는 나를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빨리 1인분 몫을 해주길 바랐다.
그 과정에서 나는 홀로 물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도 않고. 근데 주변을 둘러보니 능숙하게 헤엄치고 잠수하는 사람 천지인 것이다. 이대로면 난 큰일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포기를 택하고 말았다. 비겁하게.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해보자 맘 먹었지만, 어디 사람 일이 술술 풀리나. 붙여주는 곳 가서 정붙여야지. 그러다보니 시간만 흘러버렸다.
지금은 철이 좀 들었다고나 해야할까. 열심히 일에 정 붙여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사도 열심히 하고 빠릿하게 움직이려고 하고. 근데 일을 못한다ㅜ
며칠 전 퇴근 시간. 역시나 한 것은 없는데 녹초가 되어있었고,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겠다는 다른 부서 선배 말에 방향이 다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홀린 듯이. 그냥 좀 앉아서 가고 싶어서.
하필 퇴근길 정체가 극심한 시간·구간이었고 원 없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차만 앞으로 가지 않을뿐. 이런저런 실없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선배가 물었다. 너희 회사 생활하는데 어려운 것 없냐고. 보통이면 손사레부터 치지만 이번엔 잠시 피아식별 단계를 겨쳤다. 아군이라는 판단이 섰다.
외롭다고 했다. 분명 주변엔 많은 동료들이 있는데 혼자 어디 섬에 갇혀있는듯한 고립감.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나한테 비수가 되어돌아올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사는 서러움. 표정이 마스크 밖으로 새어나왔는지 종종 사람들이 찾아와서 듣게 되는 "나때는 더 힘들었다" 소리들. 당장 내가 찾을 수 있는 적확한 표현은 외로움 밖에 없었다.
"안아줘.. 나 힘들어.."
주책 맞게 그때 위의 <멜로가 체질>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남자친구를 잃은 은정(전여빈 역)이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으로 기억한다. 친구들이 간만에 모여 화목하게 지내는 탓에 힘듦에도 티를 못내다가 용기내 말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대충 나도 기대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나보다.
의례적인 질문에 생각보다 묵직한 답이 돌아오자, 룸미러에는 당황한 선배의 표정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더니 긴장해서 그렇다고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이야기. 나도 알고 있다. 아직 쪼랩이기에 겪는 시행착오라는 것을. 근데 알면서도 힘들어서 S.O.S를 쳤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선배 말이 힘은 됐지만 성에 차지는 않아서 무작정 걸었다.
생각해보니 <멜로가 체질>에서 나오는 드라마 제목도 '서른이면 괜찮아져요'구나. 단도직입으로 해석하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의미일 텐데. 정말 시간에 몸을 맡겨야 하는 걸까. 출근하기 싫다. 이젠 이런 이야기 그만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