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해도 돼. 싸울 기회를 준다면.

#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오해. 며칠 째 오해와 관련된 꿈을 꾼다. 먼저 말해두자면, 나는 아주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꿈을 꾼다. 매우 디테일하고 그럴 법한 꿈. 그래서 나는 꿈을 꾸면서 진심으로 행복하기도 하고, 사무치게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토록 너무 사실적이고 다양한 꿈을 '꿈의 일기'라며 기록하기도 했다. 뭐, 어쨌거나 글 쓰는 사람이니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은 가끔 휴대폰 메모에 기록해두는 정도다.


JTBC 드라마 '서른, 아홉' 현장 스케치(https://tv.jtbc.joins.com/photo/pr10011419/pm10064361/detail/19597)

지지난 주 금요일. 꿈에 연우진 배우님이 애인으로 등장했다. 요즘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를 봐서인 것 같다. 그는 카페 창가에 앉아 나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난다. 대충 말도 안 되는 오해였다. 그의 문장이 길어질수록 내 이마 온도도 올라갈 것처럼 열이 올랐다. 처음엔 우다다 반격할 말을 품었는데, 그의 문장이 끝나자 모두 말라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뱉고 말았다. 모든 짜증을 담아서.


"아, 그만하자, 그럼."


창가에 남은 연우진 배우는 특유의 순박한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뭐라 항변할 힘도 없어서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할 수도 없으면서. 심지어 꿈에서 깨고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왜 자꾸 금요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키워드는 또 오해였다.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 한 명이 나왔다. 그는 꿈 스토리라인에서 내 절친한 친구였는데, 과실 같은 곳에서 장황하게 나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게 그렇잖아. 근데 너는 이렇게 생각 안 하잖아." "내가 바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내 대답에 그의 동공은 지진 난 듯 흔들렸고 말을 잇지 못했다. 뽀얀 얼굴이 더 허옇게 질려갔다. 친구는 앵무새처럼 내가 한 말을 따라 했다. "어...? 너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래!!" 이건 생각 못했나 보지?!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내 생각을 정해놓은 게 답답했다.


그런데 더 답답한 건, 그 모든 대화가 이뤄지고 있을 때에도 한마디 말 얹지 않던, 친구 옆에 잠자코 서있는 그(애인 배역)였다. 가끔 배역만 주어지고, 얼굴이나 형체 등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그랬다.


어쨌거나 '애인 배역'은 조용히 있다가 나와 아이돌 멤버(친구 배역)의 대화를 듣고,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와 팔을 벌렸다. 마치 '모든 오해가 풀렸으니 내가 널 품겠다'는 듯이. 나는 그의 품에 순순이 안겨주지 않았다. 그의 손을 내팽개치고 그대로 전력 질주했다.



토요일 오후. 대학 동기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30분여 만에 해치우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피자에 맥주를 마셨다. 둘 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20대 연애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친구는 본인 앞에 있는 음료라면 커피든, 맥주든 빨리 마셔 없애버리는 버릇이 여전했다. 그에 따라 나도 가뿐히 맥주를 비워내며 어릴 적 연애 이야기를 나눴다.


"10년 전 일기를 읽었는데, 생각보다 그 오빠를 많이 좋아했더라고. 그 얘기하니까 주변 친구들이 몰랐냐고 새삼스러워 하더라.“

"어, 나도 기억나. 둘이 서로 너무 좋아하는 게 보였어.”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인생 첫 연애의 말로가 어떠했느냐고, 친구가 물었다. 서로가 첫 연애였던 그와는 한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나는 차분히 그와의 최종 이별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군대에 가야 했다. 1년을 채 못 만난 상태였다. 두어번 다투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듣게 됐다. “그 선배 군대 간대.” 그는 내게 입대 일자를 알려주지 않았다.


나 말고 모두가, 그러니까 과 동기, 후배, 선배, 하물며 학과 사무실 조교님조차도 그의 입영일을 알았다. 그런데 전 애인도 아니고 무려 현 애인이자 캠퍼스 커플인 내게 말해주지 않다니?!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는 내가 살던 원룸 건물 계단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제대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사랑하고 본인도 너무 힘들지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건 이기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왜 나한테 기다릴 기회도 안 줘?' 따져 물었지만 그의 답은 확고했다.


그는 내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흔히 어린 캠퍼스 커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있다. "군대 기다릴 거야?" 나도 으레 그런 질문을 받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질문들을 하며 남의 연애사에 끼어드는 부류를 싫어했던 나는, 냉랭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하곤 했다. "사람 감정이라는 게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게 기다리고 안 기다리고의 문제는 아니죠."


뭐, 지금 생각해도 크게 나쁜 의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말을 할 때 애인이 함께 있었다는 점만큼은 몹시 나빴다. 그는 세상 객관적인 나의 답변에 조용히 맘을 닫았으리라. "당연히! 2년 같은 건 금방 가는 걸!"이라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까. 내 사랑 앞에 유효기간 따위를 붙이는 게 싫었을 뿐, 그를 향한 진심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TVN 드라마 ‘또 오해영’ 16화 중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다. 서브 남주 태진은 결혼식 전날, 구속 위기에 처해 예비신부인 해영에게 헤어짐을 고한다. 훗날 사실을 알게 된 해영은 태진을 찾아가 말한다.

태진: 너 분명히 나 기다린다고 그랬을 거야.
해영: 어, 그랬을 거야.
태진: 길게 가면 분명히 지쳤을 거야.
해영: 차라리 지쳐서 나가 떨어지게 하고 말지, 그렇게 아픈 말로 사람 죽고 싶게 만들어?
태진: 너 고생시키고 부담주고 싶지 않았다고.
해영: 부담은 못 주겠는데 상처는 줘? 그게 사랑이니?


나 역시 상처 받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물어봐주었더라면. 정말 기다릴 의지 같은 건 없는 것인지. 힘들겠지만 함께 견뎌내보자고. 그렇게 손 건네줄 순 없었던 것인지. 이제와 무슨 의미 있겠나. 그는 어렸고, 당장의 입대에 만나야 할 사람이 나 말고도 많았다. 혹시라도 군대 안에서 차이느니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먼저 상처주는 게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상처 받지.”

“그러게. 그래서 그런 꿈을 꾸나 봐.”


어느새 친구와의 대화는 최근의 이별에까지 도래했다. 그가 나 몰래 쌓아나간 오해로 헤어짐을 고했다고. 그래서 나는 한 달이 넘어서도 해명하는 꿈을 꾼다고. 내 말에 친구는 마치 스물한 살의 나를 보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상처받을까 무서워 미리 끝내는. 그래서 결국 상처 받은 건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나’인. 이 비슷한 말로. 왜 멋대로 오해하고 상처 받을까 겁내어 도망가는 걸까? 나는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오해받는 걸까? 나는 오해받는 일이 얼마나 서럽다고 꿈까지 꾸는 걸까. 언제까지 꿔야 하는 걸까.


이해를 두 번 해도 일 만나면 오해.
- 에픽하이, 또 싸워 (Feat. 윤하)


엄청난 펀치라인.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긋지긋한 싸움이 떠올라 치를 떠는 게 아니라 괜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사랑이라는 건 여러 번의 이해와 오해. 그로 인한 싸움까지 감내하는 것. 또 싸우더라도 함께 하길 선택하고 있는 가사 속 그들이 부러운 거다. 그럼 또 이 드라마가 떠오른다.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 6화 중
주열매: 나는 우리가 맨날 싸우고 또 싸우더라도 너하고 함께 찾기로 마음먹었어. 진짜 사랑을 찾을 거야.

- '로맨스가 필요해 2012' 6화 중


싸우고 또 싸우더라도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열매. 겁쟁이 윤석현은 ‘그래, 너 알아서 해.’ 하고 등을 돌리지만, 열매는 그 말을 끝까지 지킨다. 그는 사랑의 멱살을 끌고 끝까지 간다. 그렇게 사랑을 쟁취해낸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만든 두 드라마다. ‘로맨스가 필요해 2012’, ‘또 오해영’ 두 드라마의 주인공인 ‘주열매’와 ‘오해영’은 사랑 앞에 자존심 세우지 않고, 미성숙하지만 미성숙한대로 상대에게 자신의 모습을 펼쳐 놓는다. 상대가 학을 뗄 떼까지, 끝까지 간다.


“기다려 봐. 그 사람 돌아올 것 같은데.”

“죽었다고 생각하려고. 나 진짜 다 해봤어.”

“다 해봤어? 뭐까지 해봤는데?”


친구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여러 일화에 대해 말했지만 글쎄. 나로서도 그게 정말 다 한 것인지. 끝까지 가본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더 하면 민폐다. 더 하면 그 사람의 ‘NO’ 사인을 무시하는 게 된다. 그건 내 감정만 생각하는 일이고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니. 이 정도 선까지가 ‘다 해본 것’이다. 그렇게 정의 내렸다. 후회하진 않는다.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현실의 나는 여기까지 하는 게 맞아. 그렇게 믿는다. 다음 사람은 싸우고 또 싸우더라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을 택하길. 오해해도 돼. 그렇지만 제발 싸울 기회도 함께 줘. 내가 그렇게 상처주게 생겼니? 안 잡아먹는다. 나의 모든 그에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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