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송사리야, 이제부터 여기선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 알았지?"
"응???"
네 살때 일이다.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 엄마가 나타났다. 너무 당연하게도, 반가운 마음에, 엄마를 외쳤다. 근데 엄마 표정은 밝지 못했다. 빈 교실로 나를 부르더니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내가 홍길동도 아니고,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한다니!
알고보니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재취업을 한 것이었다. 단, 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그렇게 집에서는 모자관계, 어린이집에서는 사제관계인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하필 유년시절의 송사리는 틈만 나면 싸우고, 울리는 천상 장난꾸러기. 사고라도 치면 엄마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 어린이집에서 한 번 혼나고, 집에서 두 번 혼났다.
서러워서 초등학생이 되어 탈출하는 날만 기다렸다. 막상 초등학생이 되니 엄마가 어린이집 선생님이라 서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오는 날. 당시 맞벌이가 흔하지 않은 시기·지역이었기에 다른 친구들 엄마는 우산을 가지고 교문 앞에 서있었다. 물론 우산 하나 더 챙겨와 내게 건네주곤 했지만, 어린 녀석의 서운함까지 막아주진 못했을 테다. 그렇게 나는 소풍날, 학예회, 부모님 초청 행사 등에 남들보다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니면 외면하거나.
20여년이 지나 환갑을 앞둔 엄마의 직업은 여전히 어린이집 교사다. 원장이 아니라 고용되어 박봉의 월급은 받는 직장인. 박봉에 일은 많고 신경쓸 일은 천지라 젊은 선생님들도 금방 그만두는 일을 엄마가 아직도 매달리는 이유는 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
내가 스무살이던 12년 전, 담배 한 번 안 핀 아빠가 폐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정말 딱 6개월만 더 살고 아빠는 곁을 떠났다. 아빠를 병간호한 그 6개월이 엄마가 어린이집 교사 커리어를 중단한 유일한 시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상처가 한창 가슴에 깊이 박힌 시기에도 엄마는 서울로 올라와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아직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대학생 딸,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고향 폐광촌의 공립 어린이집 교사에서 서울의 흔하디 흔한 사립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었다.
가끔은 엄마가 빨리 다시 일을 구하기 잘했다 생각했다. 집에 고립되어 있는다고 달라질 것 없었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생활을 하고, 낯선 서울에 정착하며 여러 사람도 만나면서 엄마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느꼈다. 안심하고 나는 내 인생만 바라봤다. 내 꿈은 소중하다고, 꼭 이뤄야만 한다고, 회사를 다녔다 그만두길 반복했다. 엄마가 벌어오는 월급이 내 욕심을 지탱할 '뒷 배'였다.
그 사이 엄마도 지쳤나보다. 또 외롭나보다. 당연하다. 당장 30대 초인 나만해도 뭐만 하면 "역시 MZ세대네~" 소리를 듣는다. 그 MZ세대가 낳은 자녀들은 어떨까. 대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애기도, 부모도. 엄마도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자칫하면 맘 카페에 안 좋은 소리가 퍼지면 곤란하기에, 엄마는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일종의 감정노동인 셈.
거기에 어떻게든 비용을 아끼며 관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원장은 툭하면 엄마를 찾는다. 요즘 원생이 줄어 구조조정을 거쳤는데 주임교사인 엄마가 악역을 맡았다. 그와 별도로 어린이집도 사람사는 세상인 만큼 선생님과의 갈등도 비일비재. 원장 최측근이며 나이차도 큰 엄마를 점점 달가워하지 않나보다.
고로 집에 돌아온 엄마가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를 붙잡고 요즘 있었던 일을 늘어놓거나, 마음 맞는 선생님과 전화로 격정을 토로하거나. 코로나 유행으로 대면 모임이 힘들어지자 전화로 마음을 털어놓는 경우가 확 늘어났다. 단, 스피커폰으로.
근데 나도 점점 엄마의 일상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갔다. 왜냐면 나도 힘들거든. 취준생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점점 작아졌고, 4번의 직장인 생활에는 나름대로 일에 적응하면서 잔소리를 견디느라 예민해졌다.
부정적인 말 속에 부정적인 마음이 피어나는 게 우리네 인생사 아닌가. 나도 지친 채로 돌아왔는데 엄마 투정을 들어주자니 괜히 짜증내는 날이 늘어났다. 나도 힘든 게 많지만 풀 곳이 없어 벽보고 혼자 소주 마시는 날이 태반인데!
급기야 이런 생각을 속으로 했다. 왜 우리 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라서 내가 이렇게 힘든 걸까. 폐광촌에서 서울로 유학간 고등학교 시절, 남들 입는 메이커 청바지와 신발이 없어도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가 어떻게든 호강시키겠다 자극을 받았으면 받았지.
근데 서른이 넘어서 엄마 직업을 원망하고 있다니. 무언가 위기 신호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30년 넘게 살면서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스스로 일상을 지내보며 먹고 싸고 자는데 얼마나 돈이 들고 어떤 고충이 생기는지 몸소 체험해봐야 내가 한 단계 성장할 거라 믿고 있다. 거기에 엄마의 의존적 관계를 끊어내고픈 이기적 마음이 없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내가 떠나면 홀로 남겨질 엄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용기를 못 내고 있기도 하고.
다만 엄마도 홀로서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엄마도 언제까지 어린이집 선생님일수는 없고 계속 나랑 함께 살 수도 없으니까. 남은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지금은 힘들어도 거리를 둘 때가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용기도 없고 당장 돈이 없어서 미뤄둘 뿐.
그래서 한 달만이라도 단기로 방을 빌려서 자취를 해보는 게 올해 안에 이루고픈 목표다. 아마 내 이기심과 책임감의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 혹시 싸게 방 빌려주실 분 없나요.. 일단 돈 벌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