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의 주인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내 마지막 타석이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야구만 해온 내가 마지막 타석이 언제인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은퇴식은 고사하고 마지막 타석이란 인식을 갖고 타석에 들어섰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나와 미련과 회한이 컸습니다.”

<김경언, “은퇴식은 못해도 마침표는 내가 찍고 싶어요”>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80&aid=0000001137

예고 없는 방출이라는 당혹스러움에도 선수 생명의 끈을 잇기 위해 문을 두드리던 김경언 선수의 인터뷰. 마침표를 스스로 찍을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치킨집 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얼마 후에 들려왔다.


저 인터뷰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참 동했다. 비슷한 처지라 느껴진 탓이다. 당시에 나는 의욕이 앞설수록 늪에 빠지던 n개월차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본래 꿈꾸던 곳에 대한 미련이었다. 솔직히 누구나 서울대를 꿈꾸고, 다시 수능 한 번만 더 치르면 점수 대박 날 것 같지 않은가. 얼떨결에 직장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오래 간직하던 꿈에 마침표를 찍긴 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발로 타석에 들어섰고, 내 욕심 때문에 홀어머니 힘들게 했다는 원죄가 씌워졌다.


화면 캡처 2022-05-16 000959.png

김경언 선수 인터뷰 얼마 후 러시아 월드컵이 열렸다. 가장 뇌리에 남는 것은 손흥민의 라커룸 눈물로 기억되는 멕시코전. 직전 스웨던 경기 석패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거셌고, 선수들은 반드시 만회하겠다는듯 그라운드에서 전력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중남미 강호 멕시코와 비등한 경기를 펼치기엔 객관적으로 실력차가 존재했다. 아무리 악을 쓰고 상대 선수를 쫓아다니고 일부러 반칙으로 끊으며 흔들어봤지만 멕시코는 한 수 위였다. 그 어떻게 해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경기장에 감돌았다. 그게 저 눈물로 표출됐다고 생각하고.


화면 캡처 2022-05-16 003804.png

하필 한량처럼 쉬는 어제 손흥민 국가대표 골 경기 모음이 한 케이블방송에서 방영됐다. 진짜 손흥민이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넣은 골부터 보여주더라. 그 피날레는 러시아 월드컵. 물론 세계 1위 강호를 무찌른 독일전으로 끝나지만, 절로 멕시코전 느꼈던 무력감이 떠올랐다.


나 역시도 내 간절함을 어필하기 위해 무단히도 부딪혔지만, 벽에 부딪힌다는 좌절감에 너무도 많이 울었어서.


0000867808_001_20220515122801598.jpg

어제는 정말 뭔 날이었나보다. 하루종일 티비만 보고 있었는데 밤이 되니 <청춘야구단>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프로에 입성하지 못한 야구 미생들이 펼치는 패자부활전 뭐 이런 거겠지?


15년 <청춘FC>가 나왔을 때는 정말 선수들이 성장하는 게 보이고, "오 얘는 쫌만 더 잘하면 되겠는데?"하는 몰입감이 있었다. 승자 독식의 현실에서 벗어나 '미생'에 시선을 보내는 시대적 흐름도 있었고.


30대가 되어 보는 미생들의 이야기엔 부정적인 생각부터 먼저 든다. 냉정하게 프로에 자리를 차지할 실력이었으면 진작에 차지했을 테니까. 솔직히 그들도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꿈에 매달리는 건 어쩌면 마침표는 내가 직접 찍고 싶다는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프로그램을 보며 그런 감상도 들었다.


사실 나를 향한 이야기다. 누차 말하지만 서른 초반에 네 번째 첫 직장. "특이한 경력이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다가 이제서야?"라는 궁금증 어린 시선도 종종 느껴진다. 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요.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 해주는 거겠지.


지금 나는 마침표를 찍었다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사는 게 급급하다보니, 어떻게 흘러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오게됐는지를 놓치고 있다. 그런 여유로움 속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던 그때를 잠시 떠올려본 주말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저 머리카락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