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cation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송사리는 여름 휴가 언제 가니?"


요 몇 주 사이 가장 많이 들은 소리다. 심지어 같은 부서원들까지도. 그때마다 내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정말 모르겠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회사는 구성원들이 휴가를 다녀오라고 2주의 시간을 부여했다. 그리고 부서 내에선 한 주당 2명씩 휴가자를 배정. 딱 내가 들어갈 자리만 없었다. 휴가 때문에 회의가 길어질 수는 없는 상황. 나는 추후에 정하겠다고 둘러댔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가를 최대한 아끼고 싶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어디 좋은 기회라도 찾아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만에 하나'를 위해서 휴가를 비축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기회는 인내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또 한 가지는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의 후폭풍이 두려웠다. 일주일 가량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에 치일 때의 그 우왕좌왕과 좌절이 싫었다. 군대도 딱 한 번만 6박7일 휴가를 써봤다. 나머지는 3박4일 혹은 2박3일로 잘라서 자주 쓰는 것을 선호했다. 회사도 당연히 이렇게 며칠씩 잘라서 휴가 다녀와도 될 줄 알았다. 기왕이면 회의 있는 날로.


아이러니하게도 휴가 쓸 타이밍을 놓치자마자 휴가가 간절해졌다. 우선 지난 달에 부서 내에서 맡은 업무가 바뀌었다. 겨우 기존 업무에서 적응할까말까 한 수준까지 왔는데 업무 분장이 새로 주어지니 그야말로 멘붕. 여기에 선배들이 하나둘 휴가를 떠나며 백업도 들어가야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업무 수준을 벗어나자 도피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한숨이요, 몰려드는 업무 전화에 쌍욕을 내뱉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도 여자친구 앞에서. 이상신호가 온 게 분명하다. 어차피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내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일할 필요는 없었다. 휴식이 필요했다.(그래서 글을 못썼다! 천왕성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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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잿빛인 채로 사무실에 돌아댕기니 하나둘 걱정하는 연락들이 왔다. 언제 휴가가냐고. 글쎄요. 그걸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휴가 떠나서 말할 타이밍조차 안 보이걸랑요.. 평소에는 그렇게 회의 자주하더니 휴가 얘기 꺼내려니까 서면회의를 한다. 참 기구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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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할 말 제때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내 성격도 문제다. 이를 감지한 타부서 선배에게도 연락이 왔다. 오늘 꼭 휴가 승인 받고 보고하라고. 온점에서 진중함마저 느껴졌다. 무조건 휴가 얘길 꺼내야했다. 결국 부서장께 8월 3주차에 휴가를 다녀오겠다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그래"라는 딱 두 글자가 돌아왔다. 이렇게 휴가 승인 완료. 어떻게 해야 심기를 불편치 않게 하면서 오케이를 받아낼 수 있을지 고민한 시간에 비하면 참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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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부서원 이탈과 업무 과중으로 내가 휴가를 떠나는 게 맞는가, 일수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이 들었다. 돌아와서 괜히 쿠사리 먹을 바에야 내가 좀 더 고생하는 게 나으니까.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고 다녀오란다. 나보다 더 내 생각을 해주는 동료들이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휴가 첫 날. 늦잠 푹 잔 것 말고는 한 게 없다. 사실 어떠한 휴가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살면서 내게 휴가가 주어진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옛말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서른이 넘도록 취준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왔다. 돈도 벌지 못하는 백수에게 휴식이란 죄악이요 몰락의 지름길로만 여겨졌다. 무조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막상 주어진 휴가도 뭘 해야하는 것 아닌가, 소파에 누워만 있어도 되는 건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어찌됐든 재충전하라고 있는 게 휴가 아닌가. 좀 늦잠 잘 수도 있지. 하나둘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야겠다. 우선은 글쓰기. 일에 치인다는 핑계로 글에 너무 소홀했다. 일단 하루에 글 하나씩 브런치에 꾸준히 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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