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치 일기 읽기

#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by 에고고 프로젝트

“집까지 데려다줄게.”

“아니, 혼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저기 택시 온다. 저거 타고 가.”

“…”

“그래. 갈게.”


새벽 2시. 택시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채 보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토록 싱거운 마지막. 100일도 되지 않은 연애의 끝. 어쩐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뜨끈한 물에 목덜미를 덥히었다. 샤워를 마치고, 평소처럼 로션을 발랐지만 도착했다는 메시지도, 잘 도착했냐는 메시지도 오가지 않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이부자리 전기장판을 켰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내게 2주의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1주 만에 끝이 나버렸다. 약 2시간의 대화로. 울지 않겠다고 한 다짐 대신, 그의 눈물을 위로해주고 와버린 볼썽사나운 새벽. 갑자기 사고를 맞이한 사람처럼 멍했다. 편히 누울 수도 없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힘겨운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음식을 씹고 삼킬 수 없었다. 잠은 쏟아졌다. 잠은 쉬이 들었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깨고 말았다. 그 와중에 독주는 어찌나 쉽게 흘러들어 가는지. 체중계가 없어 재보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별이 내 몸을 망치고 있구나. 스스로도 무슨 대단한 사랑을 했다고 이러나 싶었지만 자기 파괴를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별했다고 곡기를 끊다니? 술을 진탕 마시는 것쯤은 익숙한 수순이었다. 하루 종일 베갯잇을 적시는 것? 흔한 레퍼토리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속이 끓고, 마음이 조각나버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정말,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30대의 이별은 그럼 안 돼.”

이틀 연속 술잔을 부딪혀 준 선배가 말했다. 나는 강아지처럼 순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20대의 이별은 어땠더라?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어디 적어둔 곳이 있을 텐데…. 그렇게 서랍 속 깊숙이 보관된 다이어리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그곳엔 2011년 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10여 년의 사랑과 이별이 빼곡했다.




2013년 10월 30일 이건 뭐

몰라. 자꾸 스윙 날리고 싶어. 그래서 오늘도 하루 종일 벽 치고 사물함 치고..
뭔가 답답함은 풀렸는데 이제 어깨 근육 아프고 손에 피멍 들었다. 조금 찢어져서 피 올라오고.
수업 내내 그걸 바라보고 있는데 이건 무슨 미친놈인가 싶더라.
심각하다. 남들 눈에는 자해하는 걸로 보일 거 아냐


자기 파괴적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20대의 나는 30대의 나보다 훨씬. 무식하게 자기 파괴를 거행했다. 동시에 지금의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성숙한 모습도 있었다.


2013년 4월 9일 무제

네가 아파하길 바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아니다.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아니듯
2014년 3월 24일 두렵다

나는 많이 괜찮아졌어.
이따금씩 보고 싶은데, 찾아보는 짓 따위는 이제 하지 않아. 내가 보고 싶은 그 얼굴은 그렇게 찾아본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야.

갈수록 아픈 기억은 떠오르지가 않아.
좋았던 것만 남고 있어. 이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겠지. 네가 행복하길 바라. 다만 가끔씩 네가 어떤 사랑을 놓쳤는지 깨달아줬으면 좋겠어. 그것도 욕심이겠지. 그것마저 온전히 버려야 내가 다 낫는 거겠지.




어제 썼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글들도 있었다.


2014년 2월 17일 어느 날 밤

묵은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냉장고 안을 살펴 찾아낸 청포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 편의점에 들러 치즈와 맥주 한 캔을 샀다. 포도알을 깨물며 맥주를 들이켜니 외로움이 급습한다. 아, 살짝 취한다. 오늘 낮에도 맥주 한 잔 했는데. 술이 빠지는 날이 없는 요즘이다. 그 아이 생각이 빠지는 날이 없는 요즘이다. 젠장.

언제든 그 애가 다시 연락해 미안하다고 하면,
아니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먼저 연락만 해줘도... 이런 생각을 늘 한다.


"나 지금 전화 오지? 그럼 바로 택시 타."

3월의 어느 날. 그와 애초 갖기로 했던 2주의 시간이 끝나는 날. 대전에 사는 친구 집에 집들이를 갔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은 새벽까지 술과 근황을 나눴고, 내 소식도 궁금해했다. 그들의 배우자도 있는 자리에 이별의 사유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아 간단하게만 전했다.


사실 기다리고 있었다. 2주를 채 채우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다시 이별을 고했지만, 일주일 더 생각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고. 그렇게 말하는 전화가 오기를.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라도. 그 말만 듣는다면, 대전에 있었지만, 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그를 보러 갈 작정이었다.


20대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처럼 과거의 그 역시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전화해 안부를 묻고, 카톡 하고, 또 전화하고, 전화해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나눠 먹었다. 다시 관계를 진전시켜 나갔다거나 우정으로 형태를 바꾼 것도 아니었지만, 얼마간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내 마음도 다른 사람에게 향했고, 그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그에게 연락이 왔었다.


2015년 4월 29일 여기는

너와 전화를 했다. 한 시간쯤. 너는 술을 마시고 있었고, 옆에서는 친구는 뭐하냐 꾸짖었지.
보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니, 너. 미안하다는 말도.
나랑 헤어지고 많이 변했다고.
그런 기억들은 안 나냐고. 한양대역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새벽을 엄청 걸었던 거.
너는 그때 기억이 불현듯 난다고. 그때 좋지 않았냐고.

나도 그랬었다고. 예전에. 지금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지. 우스웠어. 너는 왜 이제야.


이 통화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묘한 승리감에 휩싸여 처음으로 발 뻗고 잤던 것 같은데. 지금으로부터 1년 뒤의 나도 비슷한 전화를 받게 될까? 또 묘한 확신이 든다. 무조건 받을 것이라고. 근데 어차피 전화할 거면, 더 빨리 해달라고. 또 바보같이 기대를 건다. 내 마음이 남아있을 때 기적처럼 다시 날 찾아줘.




2012년 10월 25일 사람이 사는 이유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인류는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나?
2013년 11월 2일 상처

손에 났던 상처는 나아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아프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더 사랑하는 일이 있었던가?

침대에 누워 다만 그의 생각을 하면서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했는지 떠올려보다가
하나, 둘 지나갔던 사람들을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그거였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는 일보다 앞선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 안식을 주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행복할 수가 없었다.
2014년 3월 24일 두렵다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이런 사랑, 이런 이별 몇 번쯤은 더 겪을 거야.
그럴 때 나의 첫 번째 사랑이 도와줬듯 너도 날 도와줄 거야. 그때처럼 날 일으켜 세워줄 거야. 그렇지?
2010년의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2013년의 나도 너를 언제까지나 사랑할 거야.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을 거야. 그 기억 속 너와 나.
그때 벗어준 너의 옷. 우리 함께 나눠 먹었던 캔디. 함께 봤던 영화. 걸었던 길. 네가 나를 부르던 이름. 나의 일부분이 되어줘서 고마워.
2016년 9월 20일 결국

넌 바쁘니까. 생각조차 못하겠지.
할 일이 많으니까 그거 집중하는 데만 해도 머리 용량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네가 걷는 그 거리, 건물에는 내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너는 속 편하게 다니겠지.

너는 그러려니 넘기는 애고, 나는 그렇게 못하는 애니까.
나는 나 때문에 힘든 거고, 너는 너 때문에 힘들지 않은 거야.

그런데 있잖아. 나는 아프고 또 아프더라도 이럴 수밖에 없어.
이럴 거야. 앞으로도 계속. 상처받고 상처받더라도. 진심을 다해 좋아하고 노력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나는. 나는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모든 것은 다 나아지기 마련이야.


"저저, 인정머리 없는 가시네!"

엄마는 나를 종종 그렇게 표현하곤 했다. 언제는 독립심이 강해 좋다고 했으면서. 오래된 단짝은 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보이지 않는 여러 겹의 선을 그어두고, 누군가 그 선을 침범하려 들면 겨울왕국 엘사처럼 조용히 얼음성 지어 떠나버린다고. 그런데 일기 속 나는 오히려 안나에 가까웠다. 가시 돋친 엘사를 몇 번이나 끌어안고 또 끌어안는.


그 지옥 같던 이별들도 결국은 끝이 났다. 그 모든 게 지나갔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주 접하는 문장이지만, 일기로 10여 년의 시작과 끝을 가만가만 보고 있자니 이보다 와닿을 수가 없다. 그 모든 것이 잊혔다는 게 씁쓸하진 않다. 매번 새로운 사랑을 찾아냈다는 게 위안이 된다. 그 모든 배신을 겪고도 계산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사랑에 뛰어드는 게 나라서.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인연에 덧씌우지 않고 또 한 번 사람을, 사랑을 믿는 게 나라서. 그 모든 이별에도 나를 잃지 않아서.


앞으로 며칠 혹은 몇 주는 더 아프겠지만, 발은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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