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그 뒷 이야기 1
작은 신사들 (by 루이자 메이 올콧)
제1장 네트
“선생님, 여기가 플럼필드인가요?” 남루한 옷을 걸친 소년이 승합마차에서 내리더니 곧 커다란 정문을 열어준 남자에게 물었다.
“그렇단다. 누가 널 보냈니?”
“로렌스 선생님입니다. 부인께 드릴 편지가 있어요.”
“그렇구나. 안으로 들어가서 편지를 부인께 드려라. 부인이 너를 맞이하실 거다, 꼬마야.”
그 남자는 유쾌하게 말했다. 네트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안으로 들어갔다. 막 싹트기 시작한 잔디와 꽃봉오리가 핀 나무 위로 봄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네트는 자신 앞에 있는 커다랗고 네모난 집을 보았다. 현관이 고풍스럽고 계단은 넓은 데다가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 집이 아늑하게 보였다. 커튼과 덧문 사이로 생기있게 깜박거리는 불빛이 드러났다. 네트는 문을 두드리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아이들의 춤추는 모습이 벽에 비쳤고 즐겁게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네트는 자신처럼 집 없는 ‘꼬마’에게 저 안의 빛, 온기, 안락함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부인이 나를 만나주시면 좋겠다.”
그는 이렇게 바라면서 그리핀 머리가 달린 청동 고리쇠를 잡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하녀가 발그레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하녀는 소년이 조용히 편지를 건네자 미소를 지었다. 홀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품이 소년들을 맞이하는데 익숙한 듯했다.
“이 편지를 부인께 전해 드릴 동안 저기 앉아서 빗물을 좀 털어요.”
기다리는 동안 네트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문 옆에 어둡고 후미진 곳이라 아이들을 한참 쳐다봐도 눈에 띄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집에는 소년들이 온갖 즐거운 놀이를 하면서 비 오는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소년들이 있었다. 위층에도 아래층에도 심지어는 부인의 방에도 있었다. 여기저기 열린 문틈으로 몸집이 크고 작은 소년들이 즐겁게 모여 저녁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책상, 지도, 칠판, 흩어져 있는 책들이 있는 오른쪽 방 두 개는 교실이 분명했다. 불이 활활 타는 난로 옆에 사내아이 몇 명이 한가로이 드러누워 부츠 신은 발을 허공에 대고 신나게 흔들며 새 크리켓 경기장에 관해 떠들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키가 큰 아이가 주위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플루트를 연습했다. 다른 두어 녀석은 책상 위로 뛰어다니다 잠깐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다른 꼬마가 칠판에 그린 우스꽝스러운 가족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왼쪽 방에는 신선한 우유가 담긴 커다란 단지와 갈색 빵과 하얀색 빵 더미가 놓인 식탁이 보였다. 소년들이 좋아하는 윤기 어린 생강빵 무더기도 있었다. 배가 고픈 네트는 집 안에 배어 있는 토스트 향기와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구운 사과 냄새로 참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를 끈 장소는 복도였다. 입구 위쪽에서는 잡기 놀이가 빠르게 펼쳐지고 있었다. 한쪽 층계참에서는 구슬치기에 여념이 없었고 다른 쪽에서는 체스를 두고 있었다. 계단 하나를 차지한 소년 한 명은 책을 읽고 있었고 소녀 한 명은 인형과 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소년들 몇은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옷이 해지는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난간에서 미끄럼을 탔다.
네트는 이 신나는 경주에 흠뻑 빠져 자기가 있던 구석에서 나와 아이들 쪽으로 다가갔다. 무척 활기찬 소년 한 명이 엄청 빠른 속도로 난간을 내려오다 멈추지 못하고 머리 어딘가가 깨졌을 법한 소리를 내며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11년 동안이나 난간에서 놀다가 떨어지며 부딪힌 덕분에 그 소년의 머리는 대포처럼 단단했다. 네트는 떨어진 아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달려갔다. 하지만 그 소년은 눈을 빠르게 잠깐 깜박거리더니 조용히 누운 채로 처음 보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놀랐다는 듯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
네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짧고 간단하게 똑같이 따라 했다.
“너 새로 왔니?”
아이는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고 물었다.
“아직 몰라.”
“이름이 뭐야?”
“네트 블레이크야.”
“나는 토미 뱅스야. 너도 올라가서 해볼래?”
그리고는 손님을 접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별안간 벌떡 일어났다.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 때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네트는 여기서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걸 느끼면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데미, 새로운 아이가 왔어. 와서 인사해.”
활기 넘치는 토미는 그렇게 말하고 지치지도 않은지 다시 미끄럼틀로 돌아갔다.
토미가 부르자 계단에서 책을 읽고 있던 소년이 갈색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잠깐 보더니 조금 부끄러운 듯 책을 팔 아래에 끼고 새 친구에게 인사하려고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네트는 호리호리하고 눈빛이 선한 이 소년에게 왠지 호감이 갔다.
“조 이모 만났니?”
무슨 중요한 의식인 듯 데미가 물었다.
“너희들 말고는 아직 아무도 못 만났어. 기다리는 중이야.”
네트가 대답했다.
“작은 이모부가 널 보냈니?”
데미는 친절하고 진지하게 계속 물었다.
“로렌스 선생님께서 보내셨어.”
“로렌스 선생님이 바로 작은 이모부야. 작은 이모부는 항상 착한 아이들을 보내셔.”
네트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미소를 지었고 야윈 얼굴도 밝아졌다. 두 소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다정하게 서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 어린 소녀가 인형을 안고 왔다. 키는 좀 더 작았지만 데미와 닮은 아이였다. 얼굴은 장밋빛이 돌며 둥글었고 눈은 파란색이었다.
“얘는 나와 쌍둥이인 데이지야.”
아주 귀하고 소중한 물건을 보여주듯 데미가 소개했다.
아이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작은 소녀는 얼굴에 보조개가 패도록 즐거워하며 싹싹하게 말을 이었다.
“너하고 같이 있게 되면 좋겠다. 우리는 여기서 잘 지내거든. 그렇지, 데미?”
“당연하지. 그래서 조 이모가 플럼필드를 세운 거잖아.”
“정말로 좋은 곳인 것 같아.”
네트가 어린 두 친구의 쾌활한 대화를 듣고 대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집이지. 그렇지, 데미?”
데이지는 모든 일에 데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아니, 나는 빙산과 물개가 있는 그린란드가 더 재미있는 장소 같아. 하지만 플럼필드도 무척 좋아. 지내기에 아주 좋은 집이지.”
마침 그린란드에 관한 책을 관심 있게 읽던 데미가 대꾸했다. 그가 네트에게 책에 있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려는 순간 하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응접실 문을 향해 고갯짓하면서 말을 했다.
“잘됐어요. 여기서 지내게 될 거예요.”
“와, 신난다. 이제 조 이모한테 가자.”
데이지는 보호자라도 되는 듯 손을 잡고 네트를 이끌었다. 네트는 금방 자기 집처럼 편안해졌다.
데미는 자기가 사랑하는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고 데이지는 네트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건장한 신사가 어린 남자애 둘과 소파 위에서 장난을 쳤다. 날씬한 숙녀는 읽은 편지를 다시 한번 읽은 듯 막 내려놓고 있었다.
“이모,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데이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아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얘야. 여기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숙녀가 네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인사했다. 그녀는 자애로운 눈으로 네트를 쳐다보며 네트의 앞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으로 쓰다듬었다. 외롭고 여린 네트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