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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Nov 16. 2023

[제민천에서 만난 사람들] 공주시 첫 개인갤러리의 시작

편집자주 : 쇠락해 가던 원도심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공주시 제민천 주변 원도심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도시재생'을 하겠다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제민천이 좋아서 하나 둘 책방을 열고 공방을 내고 커피를 내리고 공연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민천의 문화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제민천에서 만난 사람들] 은 가가상점 김민지님의 기획과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정갤러리 대표 이미정. 2016년 공주시 최초 개인 갤러리로 문을 열다.

Q 관장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관장님과 마주 앉으니 마음이 설레네요.

많은 분들께서 다 알고 있지만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이미정 : 안녕하세요, 이미정입니다.

공주 원도심에서 첫 번째 갤러리를 개관했고 2016년부터 시작한 갤러리가 곧 8년차가 되네요.


Q. 지금 공주 제민천 일대는 작은 책방과 갤러리들이 각각 7, 8개씩 포진해서 전국적으로도 문화적인 향기가 넘치는 곳으로 이름이 알려졌잖아요.아무도 이런 거리를 상상하지 못할 때 처음 오픈한 갤러리. 저는 그 막막한 일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셨을까 항상 궁금했거든요.

이미정 : 갤러리수리치 대표가 그런 이야길 하기도 했어요. ‘관장님 덕분에 자기들은 숟가락만 얹은 꼴이다. 감사하다’. 저 혼자 다 한 건 아니고 주변의 격려와 도움으로 지속하고있지만 말씀처럼 처음 시작했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갤러리운영에대해 저도 다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우리 나이로 56세 때 시작했는데 그때까지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대학 강의도 나가고 화가로서 활동했거든요. 그런데 학원이랑 수업을 다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고 보니까 ‘전업 작가’, ‘전업 주부’ 둘 다 단어가 주는 무게가 너무 무겁고 싫었어요. 보통 이 분야의 친구들은 일선에서 물러나면 자기 공간 하나씩 가지고 조용히 그림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조금 더 나아가서 갤러리와 작업실을 같이 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집은 계약도 불발되고 진행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학원을 운영하던 바로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거에요. 그것도 처음엔 딱 2년 운영자금만 놓고 시작했어요. 그게 벌써 2016년도 이야기네요.


Q : 그렇게 제민천 옆에서 계속 역사가 이어지게 된 거네요. 어린이 미술학원을 시작하셨던게 1983년, 이미정 갤러리가 2016년. 지금까지 40년을 이곳을 지켜오신 거잖아요. 미술학원하고는 다르게 갤러리를 이렇게 유지하는데는 어느 정도 비용이 들지 궁금합니다.

이미정 : 월세, 공과금, 기본 운영비, 거기에 홍보비만 해도 한 달에 200에서 300만 원이 들어요. 그림만 걸었다고 해서 알아서 그림을 보러 오진 않으니까요. 집을 사려고 했던 돈을 헐어서 이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운영비로 사용했죠. 첫 1, 2년은 너무 힘들었어요. 누가 공주에 그림을 보러 오냐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고요. 결국 4년째 되니까 자금이 완전히 바닥이 나서 가족들과 상의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남편하고 아들이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더라고요. 엄마가 공간을 포기하면 이 거리는 다시 바뀔 거라고. 제민천 거리가 이 모습을 지켜나갔으면 한다면서요. 남편도 제가 재미있다면 계속 해보라고 하더라구요.


Q : 이 거리가 관장님한테는 어떤 의미일까요? 가족들도 단순히 갤러리를 운영하고,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느냐를 떠나서 제민천의 거리를 지킨다는 의미를 말씀하신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이미정 : 제가 공주여중(현재 공주여자고등학교 교내에 위치)을 다닐 때 집은 공주고등학교 앞이었어요. 8시 2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면 8시에 나가서 막 거의 뛰다시피 제민천 길을 다녔죠. 그래서 지금도 걸음이 빨라요(웃음). 더 어릴 때는 제민천에서 친구들이랑 물놀이하면 저 위쪽에서는 동네 엄마들이 기저귀를 빨았고요. 부모님이 데이트 하실 때는 오빠랑 저랑 공주극장에서 영화 보게하시곤 했어요. 조개탄이라고 아시나요? 그 때는 극장 안에서 조개탄으로 난방을 했거든요. 저는 빨갛게 달은 조개탄을 보고 ‘저 고구마는 다 익은 거 같은데 언제 주나?’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이 거리는 단순히 이미정갤러리가 주소지를 둔 곳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이 거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살았고, 추억을 담았고, 이곳에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죠. 모든 걸 그대로 두고 살 수는 없더라도 공주의 가치를 담고 있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요.


Q : 오랜 기간 관장님이 이 거리에서 이루어 낸 걸 일일이 다 소개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워요. 지금 행사기간이기도 하고 이 거리의 히트작이기도 한 ‘그림상점로’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이미정 : 이미정갤러리를 운영한지 5년째 되던해에 공주문화재단이 발족되었어요. 이 거리에 이런 갤러리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며 원도심에서 그림을 팔아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2017년부터 3년 동안 장학기금 마련 전시회(공주문화원, 명학장학회와 함께 진행)를 개최한 일이 있는데 그때 모든 그림을 40만 원으로 책정했거든요. 200만원 짜리 그림도 40만원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인기가 많았죠. 공주에서도 그림이 팔렸다는 그 가능성을 보고 ‘그림상점로’를 기획했다고 들었어요. ‘공주에서 프로 화가들의 작품을 살 수 있다. 그림을 살 수 있는 조건이 꽤 괜찮다’는 평이 돌면서 마치 아트페어 같은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Q : ‘그림상점로’가 유명해져서 전국에서 이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도 들었어요. 작년엔 천만원짜리 그림이 팔렸다는 말을 듣고 놀랐기도 했고요. 공주의 어떤 점이 성공 요인이었을까요?

이미정 : 정확히는 천 이백만 원이었죠. 그런 소식은 금방 전국으로 퍼져요. 서울까지 안가도 공주에 가면 좋은 그림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갤러리 주변이 이렇게 예쁜 동네이니 꼭 그림을 사지 않아도 와보기가 너무 좋잖아요. 저는 아트페어는 지는 해 그림상점로는 뜨는 해라고 생각해요. 이런 사업은 전국에서도 딱 하나래요. 그래서 더 핫하죠.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갤러리가 모여 있는 것도 장점이고, 이 거리가 원도심이라서 예쁜 것도 장점이고, 공주에 화가들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대전이나 세종의 좋은 인적 자원이 있는 인접 도시도 있고요.


Q : 저도 그림상점로를 통해 그림을 사서 선물을 했었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혹시 기억에 남는 구매자 분들이 있을까요?

이미정 : 그림상점로는 단순히 작가들을 지원하는 걸 넘어서 대중과 예술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그림을 샀어요. 제게는 최연소 소장자라고 할 수 있죠. 요즘 친구들이 핸드폰에만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환경이 마련된다면 그게 산 공부라고 생각해요. 또 한 번은 엄마, 아빠, 딸이 두 달을 고민하며 그림을 사러 온 적도 있어요. 세 사람이 다 함께 만족하는 그림을 찾기 위해 비 오는 날까지도 두 달동안 몇 번이나 오셔서 결국 한 점을 결정했어요. 어떤 분은 그림을 잘 모르겠다며 1년 내내 그림상점로를 방문하시다가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어떤 건지 알겠다고 1년 만에 생애 첫 구매를 하신 분도 있어요. 아마도 그 그림 한 점이 오래도록 기억나셨나 봐요. 행사가 끝났는데도 그 그림을 결국 찾아오셨어요.

제가 하는 역할이 그거에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주고, 망설일 때 좋은 점을 얘기해주고, 그 과정에서 감상자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행복한 갤러리스트라고 생각해요.


Q : 부모님과 그런 추억을 쌓으며 찾은 그림이라면 평생을 두고 그 가족의 추억이 되겠어요. 부러울 정도인데요. 왜 남편 분이 재미있으면 계속 하라고 하셨는지 알겠어요. 이런 날들마다 관장님이 얼마나 행복한지 가족들이 알았을 테니까요.

이미정 : 맞아요. 갤러리 초창기에는 공주의료원(현재 공주의료원 자리는 공주목 복원 공사 중이다)에 소아과 진료를 접수해놓고 기다리는 시간에 아기 업고 오는 엄마가 있었어요. 여기서 작품 감상도하고 아기 기저귀도 갈고 다시 병원 가던 그 엄마가 얼마 전에 강원도로 이사간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네요. 지금 두 번째 아기가 배 속에 있다는데 이런 엄마에게서 크는 아이는 조금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요? 지금은 우리나라조차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는데 문화적인 환경이 주는 도움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이제 막 나도 그림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감상하는 팁을 하나 주실 수 있을까요?

이미정 : 그림은 감상하는 법이 없어요. 꼭 작가하고 공감대를 이루지 않아도 돼요. 예를 들어 ‘나는 녹색이 너무 좋아’라고 느끼면 그걸로 된 거예요. 난 저 녹색을 보면서 옛날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매미 소리를 들었던 여름방학이 생각나. 그럼 감상의 발전인 거고요. 그래서 그 그림이 자꾸 생각나고 다시 또 와보게 된다면 내 그림이 되는 거죠. 그림은 그렇게 감상하면 돼요.

처음부터 붓 터치가 어떻고, 작가가 어떤 사람이고 이렇게 감상할 필요는 없어요. 자꾸 감상하다가 관심이 생기고 좋아지는 그림이 생기면 작가는 그 후에 자연히 찾아보게 돼요.


Q :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편해지는데요(웃음). 이미정 갤러리에서 기억나는 전시회가 있으신가요?

이미정 : 갤러리는 1, 2월이 비수기라고 해요. 저는 지난 7년 동안 매해 그 기간에 공예품 전시회를 열었어요. 공주에 공예하는 좋은 작가들이 많거든요. 공예는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값도 훨씬 싸고 선호하는 대중의 폭이 넓어요. 갤러리 문턱이 낮아지게 하고 공주의 공예가들을 소개하고 싶어서 죽 이어오고 있어요.

또 올 봄에는 공주의 공예 명장인 임성호 도예가의 개인전을 하는데 감상자가 900명 이상이 왔어요. 제주도에서부터 이 전시회를 보러 온거에요. 전시회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거나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며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우도있고, 예술활동으로 인해서 공주로 이주해 온 작가들도 여럿 생겼어요. 감사한 일이죠.


Q : 정말 수 많은 작가들을 만났을 텐데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는 분들이 있으실 거 같아요.

이미정 : 공주에는 숨겨진 예술가들이 많아요. 그림을 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정말 힘든 생활을 버텨가며 예술작업을 놓지 않고 온 힘을 다 해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작가들이 있어요. 이번에 이만우 작가가 이동훈 미술상을 받아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공주 출신 작가님들한테 이미정갤러리가 작은 기회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히 김현정, 유예린 같은 청년 작가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계속 소개하고 싶어요.


Q : 이미정 갤러리는 이제 이 거리의 역사가 되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싶어요. 이미정 갤러리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이미정 : 사실 제 친구들은 이제 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놀러 다니자고 해요. 저도 개인적인 시간이 많지 않은 건 아쉬워요. 8년 동안 딱 세 번 쉬어봤거든요. 도심 속 갤러리가 문을 닫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요. 한편으로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로 늙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만둘 기회가 생기겠죠. 그때까지는 예술작품과 일반 대중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하면서 살려고 해요.



출처 : 충청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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