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평택시 통미마을에서 시작한 카페는 이제 신앙이라는 틀에서 나와 더 깊이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은도서관, 사회적협동조합 등 활발히 성장해 왔지만, 조합원들의 이타심과 희생에 기대고 지원금으로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살아남기 위한 박명진 대표의 고민은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많은 사람이 똑같이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계속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위해 자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 고민을 함께 들여다 본다면 우리의 지금을 진단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로컬X기록] 시리즈는 (주)다이얼의 지원으로 기획되고 진행됩니다.
안녕하세요. 충청인사이트의 정종순입니다. 대표님을 뵙기 전에 ‘통미마을’이라고 검색해 봤는데 사회적협동조합 공장(이하 공장) 이야기가 많아서 놀랐습니다. 마을에서 정말 많은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교회 사모님에 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동네일에 열심히 봉사하는 사모님은 쉽게 연상이 가는데 이렇게 시스템을 갖추고 일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새로웠어요. 어떻게 시작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박명진 말씀하신 대로 교회였기 때문에 교회 사모의 역할이 있죠. 대부분은 그렇게 조용히 바닥에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지내세요. 교회의 리더는 사실 목사잖아요. 목사님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교회도 달라지는데, 저희 목사님은 사회 참여적인 분이라 교회가 마을의 중심이 아닌 마을의 일원으로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목회 활동의 기반이었어요. 그래서 지역에 스며드는 방법의 하나로 카페를 시작했었죠.
교회 카페로 활동을 시작하신 거네요.
박명진 맞아요. 그렇지만 교회 타이틀을 걸고 카페를 운영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실감을 했죠. 그러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보니 책이었어요. 그렇게 카페에서 작은도서관으로 바뀌고,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면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이 생기더라고요.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라면 복지기관이 많은데 조금 다른 행보인 거 같아요.
박명진 보통 교회에서 지역아동센터나 노인재가복지센터 같은 복지기관들을 많이 운영해요. 복지기관에 나오는 지원금과 인건비로 지역에 봉사하며 소소하게 먹고는 살 수 있어요. 예전에 다른 교회에서 부 교육자로 아동센터 운영도 해보았고요. 그렇지만 주민들과 만날 때 복지기관 대상자로 대하게 되니까 삶의 주체성을 가지고 하는 활동을 지원하긴 힘들었어요. 그런 한계를 느꼈던 참에 용인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님의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보면서 놀이터와 같은 어린이 도서관의 모습을 봤어요. 저도 지역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키운다는 비전을 가지고 도서관 활동을 하게 된 바탕이 됐어요. 마침 작은도서관이 시기적으로도 등록이 쉬울 때였고, 도서관을 통해 문화 활동을 하는 게 잘 맞았어요. 제가 디자인을 전공했거든요.
통미마을 작은도서관이나 사회적협동조합 공장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박명진 이 모든 과정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모아내고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할 지 도모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기획을 할 때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필요 욕망, 그리고 결핍이 만날 수 있는 것들의 장을 열어왔던 것 같아요. 그중의 하나가 통미마을에서 나고 자란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가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를 위한 무대로 전문음악인과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는 공연을 기획했어요. 이를 통해 마을활동가로 발달장애인의 엄마도 함께하는 계기가 되었죠. 닉네임이 향기라고 불리는데 그녀가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단절되어 그 안에서만 사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마을활동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사회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금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표정이 밝아지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고 주변의 다른 엄마들이 호기심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이번에 위브어스라는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데 이분의 닉네임과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보람있으셨겠어요. 사회적협동조합 공장은 앞으로도 장애인을 위한 활동이 목표이 신가요?
박명진 처음부터 무조건 장애인 사업을 해야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뜻이 모이면서 지원사업 공모에 도전했어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한계를 장애인에만 두고 있지는 않아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이어 나갈 정도로 항상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꾀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잘해오고 계시는데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박명진 작년까지는 도서관의 대화 모임을 통해서 의견을 수렴해 내는 일을 위주로 했지만, 커뮤니티 활동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저도 아이들을 낳았고 지역에서 함께 키우고자 했지만, 부모님들과 모이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고, 주민자치회도 들어가 봤지만, 통미마을이 겪고 있는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것도 한계였고요. 그런데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오히려 평택 전역에서 뜻에 공감하는 분들이 모였어요. 부모님들, 전교조 선생님, 예술가 등 다양한 분들이 모였죠.
처음 2, 3년 정도는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지원사업을 해봤는데 이건 해보니까 일회성이고 소모적이에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사람한테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기도 마을 종합 지원사업에 도전했고 3년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자원으로 기획하고, 실행하고, 축제를 여는 원동력이 됐어요. 작년까지는 3년 동안 지원사업비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안정적일 수 있었지만, 그 공간 역시 온전히 저희 건물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한 건물에서 1층은 마을문화 공유공간과 공장이, 2층엔 작은도서관, 3층에 우리 가족이 거주하다 보니 삶과 신앙과 일 모든 게 섞여버리면서 한계가 왔어요. 저 역시 사람인지라 삶의 경계에서 계속 갈등 겪는 거예요. 경제적인 어려움과 육아의 어려움마저 쌓이면서 이대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경제적인 어떤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조를 만들고 그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게끔 해서 그 안에서 자발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경제적인 활동이 이루어져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니까요. 물론 그런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 있지만 그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자본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기업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봐요. 서로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고 도와야죠.
경제적인 시스템이라면 매출 목표도 있으실 거 같은데요.
박명진 이제는 제 인건비라도 벌어야죠. (웃음) 아주 단순한 욕망이지만 내가 나 하나를 책임지지 못하면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돈을 쫓는 것은 그 또한 오래 가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돈은 가치 있는 것에 대가를 지불하고 환산되는 단위입니다. 그 가치 있는 것을 무엇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브랜딩 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구축한다는 것은 단순하지 않고 시간이 필요 해요. 또한 이 과정에서도 경제적 수익이 발생해야 유지될 힘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해 보면 지난 많은 시간은 시행착오를 하며 정비를 하며 가다듬는 시간이었네요. 지금까지는 공간 기반 비즈니스로 도서관과 카페 운영을 해왔는데 신통치 않죠. 어려운 일이예요. 매출의 목표는 일단 처음 이야기의 시작처럼 제가 인건비로 챙겨 갈 수 있는 만큼은 나와야지요.
공장을 이끌고, 여러 커뮤니티를 만들어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박명진 지금까지는 약자한테 마음이 있어서 모인 거니까 우리 마음이 다 같은 줄 알았어요. 제가 그리고 제시한 비전에 조합원들이 동의는 했지만 그게 당사자들의 비전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 차이를 깨달았죠. 당사자성이 있어야 계속 갈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제가 복지기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함께 누리고 함께 책임지는 협동조합의 비전이 조합원 하나하나의 입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안 그러면 내가 찾는게 없다고 생각해서 떨어져 나가게 되죠.
저 또한 지금 우리 지역에서 필요한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나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대학원 공부도 시작하고 다이얼(대표 이병성)을 만나서 저희 공장의 다음 스텝을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계속 이 길을 가는 이유가 뭘까요?
박명진 사람이죠. 저도 이런 식상한 얘기 하기 싫은데 (웃음) 그게 그냥 답이고 힘인 거 같아요. 뭔가 더 있어 보이는 걸 얘기하고 싶지만 결국은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힘이 나고.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얻고, 나와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행운이잖아요. 앞으로 내 포지션에서 내 강점을 사람들과 나누며 꿈을 가지고 잘 작동할 수 있게 촘촘하게 꾸려나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대표님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 한 권 추천해 주시겠어요?
박명진 저도 여러 일들이 시도하면서 엎어지면서 좌절하고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그럴때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사업의 철학’같이 본질을 얘기하는 이런 책들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내 안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출처 : 충청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