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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Jun 01. 2023

[M] 4. 혹시 내일도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어제 하루 종일 이동장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밤이 오고 아침이 다시 밝은 건 알 수 있다. 오늘은 그 여자가 물이 많은 방으로 가는 것도 따라가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이동장 입구에 그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계속 뭐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혼자 말하더니 손뼉을 치고 자꾸 손을 내민다. 그럴수록 나는 더 이동장 벽에 몸을 붙였다. 더 이상 밝은 곳에 있고 싶지 않다. 여기는 너무 넓고 너무 밝다.

 

 하루 종일 잊을만하면 들여다보고 뭐라고 하더니 저녁이 되자 갑자기 그 여자의 손이 이동장 안으로 쑥 들어왔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무기력하게 잡혀서 끌려 나왔다. 혹시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크게 화가 난 거 같지는 않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여자는 다시 나를 품에 안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숨죽이고 기다렸지만 내 몸을 감싼 팔에 힘이 빠지지 않는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도 웅크리고 가만히 있었더니 내 옆구리에 그 여자의 심장 소리가 울렸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 긴장이 스르륵 풀려버려서 나도 모르게 또 오줌이 새어 나왔다. 처음엔 내가 오줌을 쌌는지도 몰랐는데 그 여자가 나를 안고 그 물이 많은 방으로 가서 갑자기 내 배를 씻기고 바닥에 천천히 내려놨다. 나는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있어서 가능한 몸을 문쪽에 바짝 붙였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옷을 벗고 오줌이 묻은 몸을 닦더니 다시 나를 안고 아까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그 여자가 나만 안고 있으니까 그 푸들 꼬맹이가 그 여자의 무릎 위로 기어 오려고 한다. 내가 계속 으르렁 대자 몇 번 시도하던 그 꼬맹이는 더 이상 무릎으로 기어 올라오지 않고 그 여자 옆에 몸을 붙이고 앉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그 여자가 날 안은채 무릎으로 걸어서 그 푸들의 사료통으로 갔다. 사료그릇에 손을 뻗어 몇 알을 쥐더니 그걸 내 코 앞에 펼쳐서 보여준다. 무슨 의미일까. 나는 얌전히 있고 싶었지만 코 앞에서 냄새가 나니까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제도 오늘도 굶은 탓이다. 결국 나도 모르게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자 손이 더 가까이 왔다. 손바닥을 더 오목하게 모아서 들이대니까 냄새가 더 진하게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사료 한 알을 입에 물고 그 여자의 기색을 살펴봤다. 낮게 흥얼거리는 소리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좀 더 용기를 내고 몇 알을 더 씹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나를 갑자기 사료 그릇 앞에 내려놓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품으로 돌아가려다 멈칫했다. 그 여자는 또 내 머리부터 등을 계속 쓰다듬으며 그 사료통을 자꾸 두드렸다. 이건 먹어도 좋다는 신호인 거 같다. 그 사료통의 사료를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울 동안 그 여자는 내 옆에 있었다. 배를 채우고 기세 좋게 그 옆의 물도 마셨다. 여기는 너무 조용해서 공기 중에 내가 물을 마시느라 할짝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오늘도 나를 농장에 보내지 않을 모양이다.

 

 혹시 내일도 여기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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