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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Jul 22. 2023

[M]5. 이름이 생겼다.

여기 온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여자가 나갈 때마다 나도 농장으로 가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여자는 아침마다 나를 들여다보고 자꾸 무릎에 앉힌다. 그럴 때마다 내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니까 여자는 다시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럴 때마다 푸들 꼬맹이가 신나서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게 짜증 나서 오늘은 다시 나를 무릎에 올려달라고 팔에 매달렸다. 팔을 긁어대는 나를 빤히 보던 여자는 그 푸들 꼬맹이랑 나를 둘 다 안아 올렸다. 이번엔 그놈을 따라서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기댔다. 생각보다 좋다. 그래도 저 놈이 닿는 건 싫다.


갑자기 ‘띠띠띠~ 찰캉’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이 조용한 곳에서 갑자기 소리가 나니까 너무 놀라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여자가 반갑게 현관으로 나가니까 닮은 거 같은데 더 나이 든 여자가 들어왔다. 나를 보고 뭐라고 하는 거 같아서 이동장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화가 났을까? 나를 또 다른 곳에 데려가는 걸까? 그 푸들 꼬맹이는 신나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고 뛰어오르고 난리가 났다. 저 꼬맹이는 이 여자랑 다른 사람들까지도 다 좋아하는 거 같다. 화가 난다.


새로운 여자가 나가고 한참을 지나서 이동장에서 나왔다. 그 여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를 기다린 걸까? 누가 나를 이렇게 오래 쳐다봐 주는 게 좋다. 손바닥을 내밀고 뭐라고 자꾸 소리를 낸다. 저 소리는 나를 볼 때만 나는 것 같다. 나를 부르는 걸까? 가볼까? 혹시 내 짐작이 틀렸을지도 몰라서 조금씩 천천히 다가갔는데 내가 그 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나를 보고 있다. 드디어 내가 그 손에 닿으니까 다른 손으로 머리를 또 쓰다듬는다. 그 온기가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꼬리가 흔들렸다. 나를 부르는 게 맞나 보다. 나만 보고 나만 안아주고 정말 그럴 건가 보다. 나도 저 푸들 꼬맹이처럼 계속 있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 좋아서 또 오줌이 새어 나왔다. 여자가 다시 나를 안고 씻기러 간다. 왜 자꾸 씻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기 살게 해 준다면 이 정도 무서운 건 참아야 한다.


소리 하나는 기억할 수 있게 됐다. “몽아~”라고 부르면 항상 그 여자가 날 보고 있다. 이 소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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