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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May 16. 2023

[M] 3. 여긴 너무 밝다

 아침이 되자 방안이 밝아졌다. 이곳은 어디나 햇볕이 잘 든다. 창가 아래 그 여자의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푸들도 깼는지 방방 뛰면서 할짝대는 소리도 난다. 정말로 인간 옆에서 자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젯밤에 너무 배가 고파서 사료를 다 먹어치웠는데 눈치 못 챈 거 같다. 아마 꼬맹이가 먹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데 왜 나를 또 만지는 거지? 그 여자가 나를 만질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뻣뻣해진다. 뒷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서 도망갈 수도 없다. 도망쳐도 내 작은 다리로는 결국 다시 잡히기 하기 때문에 어설픈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너무 무섭다.


 한참을 쓰다듬더니 그 여자가 또 물이 나오는 방으로 갔다. 인간도 무섭지만 혼자 남겨지는 건 더 무섭다. 문에 매달려서 마구 긁으니까 잠시 후 문이 다시 열렸다. 나는 어제처럼 다시 문지방을 넘지 않고 그 여자가 물에 빠져서 죽지 않는지 지켜봤다. 물소리가 들리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오줌이 나왔다. 여자가 갑자기 나를 보곤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가 싼 오줌을 닦아냈다. 내 냄새를 지워버렸다. 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경고다. 오늘은 농장으로 돌아가는 걸까?


 내가 다 먹어버린 통에 다시 새 사료가 생겼다. 물에서도 새것의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난 인간의 경고를 이해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니 저것도 먹으면 안 된다. 어젯밤에 배를 좀 채워둬서 다행이다. 내가 타고 왔던 이동장에 들어가서 기다려야겠다. 여기는 너무 밝고 너무 넓다. 이동장안은 어두워서 안심이 된다. 이 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농장에 도착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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