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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May 15. 2023

[M] 2. 이 여자도 내 뱃속에서 새끼들을 뺏어갈까?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난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지는 건 처음이다. 푸들은 이 손길이 익숙한지 머리를 들이밀고 바닥에 누워 배를 보인다. 어떻게 배를 보일 수가 있지?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에게 나는 갑자기 심통이 났다. 그래서 또 내게 가까이 오려는 놈에게 으르렁 거려줬다.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여기는 이상하다. 작은 푸들 한 마리와 저 여자 빼고는 아무도 없다. 너무 조용하니까 그것도 무서워서 여자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여자가 어제 그 물 냄새가 나는 방으로 가자 겁은 났지만 이 낯선 곳에서 저 여자를 놓치고 혼자 남겨지는 게 더 겁이 났다. 내가  다급하게 닫힌 문을 마구 긁자 그 여자는 문을 다시 열고 떨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니 그대로 열어 둔 채로 씻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어제처럼 끌려들어 갈까 봐 문지방은 넘지 않은 채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푸들은 혼자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라지. 그러다 저 여자를 놓치면 너만 남겨지는 거지 뭐.


 드디어 여자가 나를 다시 이동장에 넣었다. 어제 젊은 남자가 나를 데리고 왔던 이동장이고 그 푸들은 두고 가는 걸 보니 틀림없이 농장으로 돌아가는 거다. 다행이다. 이 여자는 나를 물에 빠뜨리지도 않았고 가위를 들이대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다. 이대로 농장으로 돌아간다면 먹을게 좀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배가 고프다.


 똥오줌 냄새가 나지 않는데서 나를 다시 꺼냈다. 이 냄새는 더 끔찍하다. 이런 냄새가 나는 곳에서 내 새끼들을 뺏어갔다. 역시 이 여자도 내 새끼들을 탐내는 걸까? 그렇지만 이번엔 내 뱃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나이 든 남자가 내 몸을 이곳저곳 만지고 눌러댔다. 나는 너무 작아서 여자가 한 손으로 잡아도 도망가지 못한다. 내 이빨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주사를 몇 대나 맞고 나자 여자가 자기 품으로 나를 받아 안고 남자와 대화를 나눴다. 나는 목욕할 때처럼 여자의 가슴에 발톱을 박고 매달렸다. 내 뱃속에 더 이상 새끼들이 없다는 걸 알면 화를 낼까 봐 걱정이 됐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의 손바닥이 내 머리부터 어깨로 등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남자와 이야기가 끝났는지 여자가 갑자기 나를 들어 떼어내더니 이동장에 넣었다. 이제야말로 농장으로 가는 걸까? 이동장 안에서 몸을 아무리 둥글게 말아도 아까처럼 따뜻하지가 않다.


 이럴 수가. 그 여자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푸들 새끼가 깡충깡충 뛰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왜 여기 다시 온 거지?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조금 좋은 거 같다. 그래도 저 꼬맹이는 싫다. 뭐가 저렇게 좋은 거지? 이 여자가 자기 엄마라도 되나? 바보 같은 것. 아직 네가 그 가위들한테 가기엔 너무 작은 거뿐이야. 실컷 좋아하라지.


 하루종일 언제 다시 농장으로 출발할지 몰라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드디어 밤이 되고 깜깜해졌다. 그 여자도 잠이 들었다. 저 푸들 새끼는 감히 그 여자와 같은 자리에서 잔다. 너무 조용하다. 겨우 한 인간과 저 쪼끄만 개가 이렇게 넓은 곳에서 지낸다는 게 신기하다. 여긴 똥오줌냄새도 안 난다.


 오늘 밤은 출발하지 않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자 다시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 아까 그 푸들이 먹던 게 바로 코 앞에 있다. 조심스럽게 사료 한 알을 씹었다. 아무도 깨지 않는다. 한 알이 뱃속에 들어가자 더 심하게 허기가 밀려왔다. 결국 통에 남겨져 있던 걸 다 먹어치웠다. 남겨져 있던 거지만 내 배가 충분히 찰 만큼 많았다. 배가 부르고 물까지 실컷 마시고 나자 너무 졸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최대한 구석으로 가서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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