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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May 14. 2023

[M] 1. 이상한 여자를 만났다

 그가 내 목덜미를 틀어쥐고 케이지에서 빼내 이동장에 넣는 동안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개들이 겹겹이 들어있는 철망으로 가득한 농장은 하루종일 시끄럽고 고약한 똥냄새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나가서 좋은 일도 없다. 물에 처박히고 뾰족한 가위에 찔리는 건 죽을 만큼 무섭다.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려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다른 개들은 두고 나만 출발한다.

 ‘왜 나만 가지? 오늘은 가위 든 사람들한테 가는 게 아닌가? 왜 나만? 혹시 나도 이대로 못 돌아가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거 같을 때쯤 갑자기 차가 멈추면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


 이곳의 냄새가 기억났다. 내가 무언가를 기억하기 시작할 때 처음 있었던 곳.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창가의 투명한 진열장 안에 있을 때는 상황이 훨씬 좋았다. 커다란 인간들이 갑자기 진열장을 두드릴 때는 놀라기도 했지만 그때는 사료도 새 거였고 물도 깨끗했던 거 같다. 그러나 작고 귀여운 시절에 팔리지 못 한 나는 그 후로 그 껌껌한 농장에 갇혔고 짖지 못하게 성대가 잘렸다. 작년에 낳은 내 새끼들도 아마 이곳으로 왔을 거다. 다시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누군가 데려갔을까? 제발 그랬기를……


 그가 내 목덜미를 다시 틀어쥐고 공중에 들어 올리며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는 대답 없이 쳐다보기만 했고 여자는 놀란 듯 동그란 눈이 한껏 커졌다. 대꾸가 없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는 나를 그 남자가 가지고 온 다른 이동장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실렸다. 가죽 냄새가 다르고 새로운 인간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그 젊은 사람들 차다. 한참을 달려서 또 새로운 곳으로 갔다.


 차가 멈추고 이동장이 들려서 움직이는 거 같더니 드디어 바닥에 내려졌다. 이동장 문이 열렸지만 처음 맡는 냄새 속으로 내 발로 나갈 생각은 없다. 나를 다시 농장으로 데려다 놨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빈속이라 토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또 새로운 여자다. 이번엔 젊은 남자가 뭐라고 여자에게 말을 한 후 한숨을 쉬더니 젊은 여자와 함께 사라졌다. 그 둘이 나가고 나서 나는 또 목덜미를 잡혀서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이 냄새는 안다. 이런 타일 냄새에 물 냄새가 나는 곳에서 씻기고 나면 가위를 든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걸 생각한 순간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경직됐다. 반항하면 맞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물소리가 무서워서 발버둥을 쳤다. 그러자 그 여자가 갑자기 나를 자기 가슴에 안아 올렸다. 인간의 맨살에 닿은 것은 처음이다. 심장 소리도 들렸다. 내가 조금 진정이 되자 그 여자가 손으로 물을 떠서 내 몸에 부었다. 발톱에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아까보단 덜 무서웠다. 목욕이 끝나고 털을 말릴 때까지 여자는 나를 가슴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다시 아까 그 방으로 돌아가니 이제야 작은 갈색 푸들 새끼가 보였다. 내 냄새를 맡으러 오는 놈에게 으르렁 거려줬다. 지금은 나보다 작지만 이런 놈들도 금방 나보다 커지곤 했다. 그러면 항상 내 밥을 뺏어먹거나 괴롭혔다. 하루종일 갇혀있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으니 만만하게 보여 타깃이 되면 힘들어진다.


 사료와 물이 담긴 통을 내 앞에 가져다줬지만 먹지 않았다. 안전하게 농장으로 돌아가려면 쥐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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