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선을 긋고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건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다. 사실 지구 위에는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동물, 식물, 조류, 어류, 곤충, 박테리아 등등. 인간은 내 공간에 내가 허락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 내가 초대하지 않은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그건 침입으로 간주할 수 있고 법적으로 처벌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골로 들어오고 나자, 나는 내가 이 땅의 주인인지 침입자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 산에 사는 생명들에게는 나는 그저 새로 나타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 한 개체일 뿐이었다.
드디어 우리의 영역 다툼이 시작됐다. 이사 오고 나서 첫봄은 집에서 잠 밖에 잘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기간이었다. 5월 하순쯤 되자 집에 개미가 줄을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딱 2주 더 바쁘고 나서야 시간이 생겨 개미 퇴치에 관한 것을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매일 청소하고 집 안팎을 돌아다니니까 거짓말같이 개미가 사라졌다.
6월이 되어 초여름 장마로 큰비가 오고 난 아침, 집 앞에 고라니가 산책을 나왔다. 안 그래도 외진 집인데 두 부부가 바쁜 데다 그나마 있던 사람 냄새까지 비에 쓸려갔던 모양이다. 딱 1년 후 같은 날에는 닭장 속에 고라니가 들어와서 앉아있기도 했다. 성체가 된 고라니는 덜한데 작은 새끼 고라니들이 꼭 집 근처까지 다가왔다가 강아지랑 산책하러 나가면 도망가곤 한다.
고라니가 다녀간 후에는 집 현관에 때까치가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현관이라 함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이 마주치는 위치라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이 산에 우리 부부가 만만하다고 소문이 난 건지 의심스러웠다. 의심은 그다음 해에는 확신이 됐다. 다음 해에는 아예 그 자리에 더 일찍 둥지를 트는 새가 생기더니 알을 낳고 부화해서 잘 커서 이소하고 나니까 며칠 후 다른 새가 둥지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봄부터 여름까지 현관을 나설 때마다 눈치를 보고 발끝을 들고 다녔다.
그 외에도 손님은 끝이 없었다. 돌담에 풀을 그대로 두면 금세 뱀이 나타나고 말벌이 처마 밑에 벌집을 만들기도 하고 연못에 붕어를 넣어두면 황새가 도시락 삼아 잡아먹으러 날아오기도 했다.
땅도 부지런했다. 마당에는 정말 온갖 종류의 풀이 났다. 처음엔 내가 너무 손이 느린 게 문제인가 했는데 동네어른들 말로는 산 밑이라 그렇다고 한다. 아무리 뽑아도 매일 바람을 타고 산에서 날아오는 풀씨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이건 같은 주택 마당이라도 도심지 하고는 다른 이야기였다. 다만 나는 내 닭들에게 다양한 풀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으로 여기기로 했다.
등기부등본 따위는 자연 앞에서 종이 쪼가리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여기서 살려면 나도 똑같이 부지런히 집 안팎을 다니며 내 냄새를 묻히고 여기가 내 영역이라고 알려야 한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언제든지 새로운 손님이 방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