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스막골 Jul 09. 2023

[편지] 너는 스트레스받을 때 어떻게 해?

사실 나는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야. 아니지 성격이래. 몇 년 전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어. 그게 남들 눈에도 얼마나 심각해 보였는지 결국 친구가 자기네 회사에서 나온 스트레스 검사키트를 가지고 와서 나를 테스트한 거야. 그 수치를 근거로 병원을 가든 쉬든 하라고 잔소리를 한바탕 해 줄 셈이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수치가 별로 안 높은 거야. 그때 친구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지 뭐야. 그 후에도 시간을 두고 몇 번 더 했는데 계속 그렇게 나와서 우린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강철멘탈"이었나보다.


그 후에 MBTI 나 각종 심리검사 결과들을 보다가 한 가지 공통점을 깨달았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쉽게 공감하고 슬퍼하고 감정이입을 하는데 정작 내 일에는 정반대로 행동한다는 거야. 제삼자가 되어서 관찰하듯이 사실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려. 슬픈 일이든 속상한 일이든 남한테 내 얘기를 하고 나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 나는 내가 남 얘기에 이 정도 감정 노동을 하고 에너지를 쓰니까 남들도 그럴까 봐 미안했던 거야. 민폐를 끼쳤다고 수치스러워하면서.


웃기지 않니? 나는 웃겼어. 어릴 때는 하루에 한 번씩 울고, 너무 울어서 감정이 풍부한 줄 알았더니 그게 남의 일에만 작동하는 거였다니. '내 안에 우주가 있구나 싶더라. 뭘 아는 게 없어서......'


뇌가 스스로 세뇌를 해서 그런지 호르몬이나 각종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몸은 표현을 해. 나는 있잖아.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깨가 뭉쳐. 승모근이 딱딱하게 굳다 못해서 솟아올라오는 느낌이 실시간으로 느껴지지. 몇 년 전 친구가 내 스트레스 수치에서 크게 심각한걸 못 찾았았던 그 시기에 실은 어깨가 굳어서 팔을 90º 도 못 올리고 있었거든. 그게 더 심해지면 온몸이 아프기 시작해. 옆에서 손가락으로 종아리를 슬쩍 찔러도 비명을 지를 만큼.


나는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어. 내가 남을 쿡 찔러볼 일이 없으니까. 평소에도 그 정도 찌르면 아픈 줄 알았지. 그게 아니라는 걸 안건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은 나랑 정 반대거든. 이 사람은 온몸이 말랑말랑해. 운동선수 출신이라 물살은 아니야. 그냥 어깨고 종아리고 굳어있는 곳이 없는 거야. 나는 사람 어깨가 이렇게 말랑말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어. 남편은 자기가 안마해 준다고 살짝 손만 대도 아파죽겠다고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놀랐고. 서로 상대를 보면서 사람 몸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이해를 못 했지.


그 후부터 조금씩 관찰을 하기 시작했던 거 같아. 오늘 머리가 무거운지, 어깨가 굳고 있는지, 소화가 안되는지, 뱃속이 쓰린지, 살을 눌러봤을 때 아픈지. 다음엔 정신적인 것도 살펴보기 시작했어. 밤늦게까지 잠이 안 오는지, 새벽에 자꾸 깨는지, 출근해야 하는 거 알면서 이불속에서 핸드폰 붙들고 미적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안 하던 화장에 시간을 더 쓰고, 괜히 옷장을 뒤지며 짜증을 내고, 그러다 겨우겨우 지각만 면할 정도로 나섰다가 차키를 못 찾아서 집에 다시 뛰어들어와 방을 다 뒤집고, 아슬아슬하게 운전을 하고, 결국 동료들에게 미안해하며 일터에 들어서고, 이런 불쾌한 아침시간을 탓하며 종일 일을 미루고. 저녁이 되면 말은 안 하지만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밀려와. 그럼 또 잠이 안 오지.


이건 회피의 과정이야. 이게 왜 회피냐고? 잘 봐. 이 과정 중에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그랬다가는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맞닥뜨려야 하니까 스스로 몸과 정신을 쓸데없는데 낭비시키는 거야. 그렇게 나는 오늘 너무 정신없었고 바빴다고 핑계를 대는 거지.


슬픈 일이야.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이렇게 써버렸을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에 나는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데 시간을 쓴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그다음에는 이왕에 회피를 할 거 즐거운 거리를 찾기로 했어. 나의 스트레스 원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지인을 불러내서 밥을 먹고, 다른 일들로 수다를 떨고,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해보고, 좋다는 강연을 쫓아다니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돕기도 해. 그러다 보면 아직 문제는 해결이 안 됐지만 내가 나를 망치고 있다는 죄책감은 덜 하거든. 그러다 진짜 기분 좋고 체력이 받쳐주는 날 드디어 미뤘던 문제를 대면하고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지.


이게 그나마 내가 찾아낸 방법이야. 나는 그렇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못 되는 거 같아. 겨우 찾아낸 방법이 그나마 덜 우울한 길을 찾아서 회피의 과정을 조금 단축시킨 정도라니.


오늘도 그래. 어제랑 그제 연타로 어퍼컷을 맞고 그로기 상태가 돼버렸거든. 어제저녁에라도 몰입해서 밀린 일을 해야 했는데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 결국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듯 꽁꽁 싸매고 누워버렸지. 오늘도 다시 우울한 아침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기 시작했어. 알아. 아는데 그게 또 벌떡 일어나 지지가 않는 거야. 그래서 오전을 날렸어. 어제부터 사실 뭘 잘 먹지도 못 한 상태야. 먹으면서 기분을 풀 수도 있는 건데 내 장기들이 파업을 해버렸네.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 좀 상큼하고 소화가 잘 되는 걸 찾아서 먹어볼까. 아스피린을 먹어볼까 하다가 일부러 까슬한 호밀식빵 한 조각을 질겅질겅 오래오래 씹었지. 사람이 또 씹으면서 나오는 호르몬이 있거든. 게다가 빈 속으로 오래 있어도 기분이 나아지는데 도움은 안되니까. 그다음엔 이렇게 글을 쓰는 거야. 이 글을 쓰면서 내 목, 어깨, 손가락 관절, 허리, 다리, 무릎이 어떤지 조금씩 관찰하고 있어. 이걸 다 끝내고 나면 그래도 한 편의 글은 썼다고 위안을 삼으며 아스피린을 한 알 먹으려고 해. 그리고 일해야지. 지금은 일이라도 어느 정도 해내야 스스로 혐오감은 안 생기거든.


신기하게도 어제랑 그제 생긴 일들이 데드라인이 비슷해. 약 열흘. 하나는 지금이라도 빨리 대면하고 끝내면 그럴 수도 있지만(생각하기도 짜증 나서 그러고 싶지 않아), 다른 하나는 매일매일 꾸준히 나를 힘들게 할 참이야. 이건 서두를 방법이 없어. 진짜 젠장이지.


비 온다. 다행이야. 이런 날 해가 쨍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왠지 더 짜증 나거든. 내 초라한 모습이 밝은 햇살아래 다 드러나는 거 같아서. 차 한 잔 마셔야겠다. 아스피린도 먹고. 그리고 비 맞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머지 일을 끝내야지. 다 못 끝내더라도 이젠 얼렁뚱땅 일을 시작할 만큼의 기운은 끌어모았어.



매거진의 이전글 [편지] 다 때려치우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