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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Jul 28. 2023

우리는 왜 부모를 원망해야 할까?

어릴 때의 기억은 평생 갈 수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때로는 상대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일에 내 나름대로의 색깔을 입히거나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무의식 속에 저장해 두는 경우도 있다.


완벽하게 행복하기만 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 최소한 나는 아니다. 나는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것 마냥 받아들이느라 정작 내 감정은 잘 돌보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 시절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 부모님 역시 아주 바쁘고 힘들게 살며 가족을 지켜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어른들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로 자랐다. 


돌이켜보면 이건 원망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모든 문제를 부모 탓으로 돌리는데 쓰일 중요한 소재였다. 참 세세하고 촘촘하게. 심지어는 내가 혼자 한 선택이 실패해도 그런 선택을 한 기저에는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도 내렸다. 그때 본 수많은 심리학 책들이 그 근거를 대주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서른 살이 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십 대도 아니고, 그 십 대의 경험으로 영향을 받은 이십 대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까지 부모 핑계를 대야 하지? 아직도 그때 우리가 가난해서, 부모가 바빠서, 내게 정서적인 지지를 안 해줘서라고 얘기할 수 있지?' 어느 날부터인가 하소연하는 내가 소름 끼치도록 부끄럽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힘든 환경에서 나와 동생들을 키워낸 사람에게 내가 준 상처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도대체 그건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심지어는 그 서운함을 자식들이 속상할 까봐 잘 꺼내보이지도 못하고 살고 있지 뭔가. 도대체 자식이 뭐라고.


어릴 때 맺힌 응어리를 지금이라도 사과받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고. 때로는 자기도 부모가 되면서 그 마음을 겪어보고 연민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화해라기보다는 용서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도 자신은 피해자인채 상대를 봐주는 게 되면 그건 언제고 다시 내 마음을 괴롭힐 수 있다. 


"내 마음이 풀어지는 건 꼭 상대에게만 달려 있지는 않아. 성인이 이라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해야지. 어릴 때 잘 못 들인 습관이나 생활방식은 내가 노력해서 바꾸면 되는데 어릴 때의 경험이 평생을 지배한다면 난 언제 어른이 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익숙하지는 않지만 책임져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힘들면 다시 또 부모 핑계를 대고 양육 방식을 탓하는 걸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은 참 지난하게도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래도 스스로를 돌보는 연습을 하면서 부모 역시 똑같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버텨온 그들의 인생에 대해 인간 대 인간끼리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겨났다. 그건 나를 키워준 고마움을 떠나 하나의 인생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든,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하든, 그 과정들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내가 먼저 단단해야 한다. 내 마음을 돌보고 내 마음에 근육을 만들고 그릇을 키워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그 안에서 재정립이 가능하다. 


지금 누가 봐도 어른인 나이라면 이것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혹시 어른이 되는 과정이 힘들고 피곤해서 익숙한 아픔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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