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시간이 생겼다. 처음엔 습관대로 손에 잡히는 데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관심 있는 주제라면 종류 불문, 종목 불문 신청했다. 문제는 이 공부라는 게 주제를 정해 놓고 스스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그동안 바빠서 구경만 했던 각종 강의들을 신청해서 듣는 거라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었다. 야트막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또 다른 강의를 신청했다. 나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 공부는 필사적으로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무조건 달려갔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적 없는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의 권유로 필사를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내가 무언가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두렵다.
소속이 없는 것은 불편했다. 자꾸 설명을 해야 하는 것도 호기심 어린 눈길도 귀찮았다. 그래서 또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 1인 언론사를 차렸다. 소속은 필요하지만 매이고 싶지는 않고 나도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에 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듣던 것을 기사라는 형식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지나니 변덕이 심한 내가 유일하게 사람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시골로 이사했다.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고 지하수 물을 먹고 인터넷도 안 되는 시골집. 눈이 오면 며칠씩 갇혀서 못 나왔지만 세상에서 어느 정도 고립된 느낌은 안정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다.
천방지축인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동네로 내려가는 걸 포기하고 뒷산으로 경로를 바꿨다. 하루하루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걸 보면서, 그 냄새를 맡으면서 하루하루 내 삶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내 집에 둥지를 튼 새의 손톱만 한 알에서도 새끼들이 부화해 날개에 힘이 붙고 깃털이 생겨 날아갈 때까지 지켜봤다.
시험관 시술을 두 번 받았다. 몸은 망가졌고 실패했다. 특별히 운동능력이 좋지는 않지만 평생 크게 아파본 적도 없어서 몰랐다.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 안에 갇혀서 시들어가는 건 마치 사망 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 태어나는 이유를 처음으로 고민했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