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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Aug 06. 2023

글을 쓰는게 절박한 일이 되었다

내가 퇴보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기 시작한 것은 1년 정도 되었다. 4년 동안 대중에게 노출된 삶을 살면서 스스로 SNS와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하게 된 일이 예상보다 너무 큰 권한을 가진 걸 알고 무조건 정보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본래 사생활이 드러나는 데 너무나 예민한 사람이라 그 과정들이 쉽지 않았다. 가리고 조정하고 걸러내면서 나름대로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때 나의 글들은 점점 메말라갔다. 


게다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은 글이 너무 길어지면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감정적인 표현, 묘사 등을 전부 뺀 데다 건조하기까지 한 글로 매력적이기까지 하는 건 너무 힘이 들어서 나는 점점 더 짧은 글을 썼다. 시간이 갈수록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 한 비문들, 강조를 위해 맞춤법을 무시한 단어들의 나열로 가득 채웠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항상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강박을 가지고 있던 나는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 마저 죄책감을 느꼈다. 보고서, 자료, 논문 같은 글들만 봤고 그나마도 차분히 읽는다기보다 중요한 핵심을 찾아내거나 약점을 찾는 읽기를 했다. 읽는 게 더 이상 즐거운 일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이상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문장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이건 단순히 글을 매력적으로 쓰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 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서조차 갈피를 못 잡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제주도에서 마법같이 시타북빠라는 책방을 만나고 함돈균 문학비평가를 만났다. 함작가님이 만든 책방이 시타북빠였던 것이다.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황현산 님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필사해 보라고 했다. 나는 차마 부끄러워서 그 앞에서 '글'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던 걸까.


그 후로 무조건 부딪히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도 하고 되든 안 되는 글을 썼다. 속으로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이것저것 가리기에는 내가 너무 막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 자괴감에 빠져서 포기할까 봐 여기저기 떠들어댔다. 책을 낸 것도 아니고 작가신청 하나 통과했을 뿐인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얘기하고, 밤에는 혼자 글쓰기 강의도 듣고,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도 신청하고, 오디오 작가에도 지원했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수많은 미사여구들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쓰고 싶다. 유치할 정도로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사랑하는 것들은 사랑한다고 쓰고 싶다. 글이 메말라 버렸듯 눈물도 웃음도 메말라버린 지금 이 껍데기를 깨버리지 않으면 나의 생에 남은 것은 서서히 미라가 되는 것뿐이므로. 그보다는 비 오면 비도 맞고 햇볕에 그을려 보기도 하면서 실컷 세상을 숨 쉬고 때가 되면 한 줌 남기지 않고 공기 중에 흩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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