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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Aug 06. 2023

글을 쓰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더 어렵다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어렸을 때 나는 '활자 중독증'이 있었다. 정말 이런 병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내가 혼자 붙인 이름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정도를 넘어서 길을 다니면 간판 하나하나 신문이 있으면 기사는 둘째치고 신문 귀퉁이에 작게 쓰여있는 발행 번호까지 읽어야 만족했다. 그래서 그걸 다 기억한다면 지금 나는 TV에 나오는 유명한 천재였겠지만 기억력이 크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가난하고 자주 이사를 다니느라 집에 책도 별로 없었고 신문 한 장 구독해 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운이 없는지 돈이 없으면 학교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 줄 어른도 없었다. 그래서 내 꿈은 꽤 오랫동안 '서점주인'이나 나만의 '서재'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아할 때도 원하는 만큼의 책은 제공되지 않았고 어른이 된 후에 나는 제법 좋은 기회를 놓쳤구나 싶었다. 그래도 영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개 없는 책을 다시 읽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던 나는 자주 공상에 빠지곤 했는데 그게 성적에는 조금 도움이 되었다. 책을 사는 거나 문제집을 사는 거나 똑같이 어려웠고, 학원은 더 언감생심이었으니 수학이나 과학은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바로 실력이 들통났지만 다행히 국어나 사회, 역사 같은 과목에서 대충이나마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래보다 혼자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인지 글쓰기 실력도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지금 내게 제일 어려운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예전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밤을 새우곤 했는데 지금은 돈을 주고 사놓고도 표지만 구경하고 있다. 어떡하든 글을 써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것은 꽤 큰 문제다. 


지금도 나는 책장을 보며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읽고 싶다고 생각해서 샀을 텐데 이젠 내가 샀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 저 무더기들을 보면서 내가 이제는 책조차 허영심으로 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글쓰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꽤 오래 걸렸다. 내가 다시 책을 짐으로 느끼지 않으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걸까. 


내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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