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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Aug 02. 2023

전홍남 동장의 중학동은 어떻게 일했을까?

공주시 첫 민간 개방형 동장이었던 전홍남 동장이 중학동 소식지 '다정다감 중학동'을 손에 들고 있다


찬바람이 골목 구석구석을 쓸어가는 겨울. 움츠린 어깨로 종종 거리며 볼 일만 보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는 그림자들 사이에서 유독 중학동만큼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아쉬운 눈빛으로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충남도내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민간 개방형 동장으로 2년을 보낸 전홍남 동장의 임기가 2022년을 끝으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임기 만료되었으니 조용히 짐을 싸서 자리를 비우라면 그 역시 가타부타 말을 보탤 것이 없지만 그렇게 보내기에 서운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나름대로 감사장을 전달하고 악수를 하고 눈을 맞춘다. 

재미있는 건 그런 자리가 동네 어른들이 마련하신 의젓한 자리, 동네 청년 창업자들이 마련한 왁자지껄한 자리 등 가지각색이라는 것이다. 

 

민간 개병형 동장의 첫 시범 사례로 2년 동안 4억 원의 예산을 쓸 수 있었다. 그 예산으로 무엇을 했을까? 그도 나름대로 선거를 치르고 선출된 동장이다. 보통 선출직은 임기 동안 눈에 띄는 업적을 쌓고 싶어 해서 생뚱맞게 번쩍거리는 건물을 짓거나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떠들썩한 축제를 열기도 한다.

중학동엔 두 가지가 다 없었다. 대신 매주마다 누들축제, 플리마켓, 콩쿠르, 깍두기축제, 제민천 음악회 등 아기자기한 행사들이 골목골목을 채웠다. 이제 사람들은 제민천에 가면 볼거리가 무엇이든 하나는 꼭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일 년에 딱 한 번 시기를 맞춰야만 볼 수 있는 축제가 아니라 거리 자체를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다.

주민들과는 함께 호흡했다. 동네에 아기가 태어나면 어른들이 직접 금줄을 꼬아서 걸어주며 축하해 주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의 생신에 찾아가 케이크에 촛불을 분다. 함께 집 앞에 화분을 가꾸고. 서로 편지를 쓰고. 공유 우산을 비치하고, 담배꽁초를 화장지로 바꿔주는 행사는 주민들에게 동네를 더 사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중학동의 변화를 지금 구구절절 읊자면 해가 저문다. 필자가 전홍남 동장에게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였다. 예산을 쪼개 다양한 일을 할수록 주민들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의 일거리가 함께 늘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일 느는데 좋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이쯤에서 전동장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로 중학동에는 '조회'가 없다. 

이유는 오전 근무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깝고, 직원들이 자기 일을 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장이 할 일은 꼭 해야 하는 사업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고, 나머지는 행정 경험도 있고, 자기 업무에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이 알아서 해낸다며 껄껄 웃기만 한다. 

 

두 번째로, 전동장은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부모님에게 직접 전화를 드린다. "제가 동장입니다."로 시작하는 통화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직원과 소통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MZ세대는 나약하다. 자식 직장에까지 전화하는 부모가 젊은 세대를 망친다.'

지금 청년 세대를 비난하는 말을 찾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전동장은 부모 된 마음을 먼저 알고 손을 내미는 방법을 택했다.

 

'소통'은 '신뢰'가 깔려야 시작된다.

열심히 공부한 똑똑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았으니 그들 스스로 사업에 대해 공부하고 서로 업무를 조율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믿었으니 기다리고 대화로 조율하는 것은 방치와는 다르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지만 실천도 누구나 하진 못한다.

 

전홍남 동장의 임기를 연장해 달라는 현수막이 동네 여기저기 걸렸었다.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뛴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동장이 주민들 사이를 누비고 다닐 동안 행정복지센터가 잘 굴러갔다면 그 뒤에 숨은 노력들이 있고, 그 노력을 이끌어 낸 리더십이 있다. 

 

아쉬움을 곱씹는 것도 때가 있으니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중학동에서 전임의 이름만 되뇌는 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있었다면 그 변화를 이끈 동력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전동장이 보여준 변화는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시작했다. 세대 간의 갈등으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는 지금 시대에 조화를 이루는 전동장의 행보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본다.




2022년 12월 31일 인터뷰 (충청인사이트 정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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