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민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에게 하는 말이다. 당신이 듣는 말들을 ‘간섭’으로 들을지 ‘조언’으로 받아들일지는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상대에 따라 때로는 상황에 따라 구분하겠지만 모든 말들을 ‘간섭’으로 치부할 거면 시골에 살면 안 된다. 서로 괴롭다.
시골은 보통 담이 낮다.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경우도 있고, 대문이 있지만 24시간 열려 있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담이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넘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담은 마당이 다 들여다보인다. 오며 가며 지나는 동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집주인이 없어도 한 번 흘깃 보는 것으로 안의 상태를 대략 짐작할 수도 있다.
만약에 어르신 혼자 사는 집이라면 동네 사람들은 이 어르신의 안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마당에 풀 한 포기 없이 깔끔하게 유지하고 계시는 걸 보면서 괜찮구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구석구석 풀이 나고 있으면 지난번에 아프시다던 무릎이 많이 말썽인지 슬쩍 대문 안을 들여다보며 어르신을 불러본다. 그런 관심(간섭?) 덕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놓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초짜 시골살이 중인 사람들에게는 잔소리 폭탄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마늘을 너무 촘촘히 심었거나 풀 관리를 잘 못 했거나 고춧대를 단단히 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숭아나무에 병이라도 들면 그 병이 다 잡힐 때까지 매일매일 눈 마주치는 분마다 농약사 가서 무슨 약을 사라고 알려줄 수도 있다. 혹여 잔디밭에 민들레꽃이 예쁘다고 클로버가 귀엽다고 방치했다가는 혀를 차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미 성인이다. 성인이니 간섭은 필요 없어 가 아니라 성인이니 적당히 알아서 들을 거 듣고 거를 거 거르면 된다. 시골살이는 매뉴얼이 없다. 텃밭 조그만 거 하나를 가꾸려고 해도 언제 밭을 갈고 언제 씨를 뿌릴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옆집을 따라 하는 것이다. 충청도에 살면서 전라도 농부가 올린 유튜브를 보고 무작정 따라 할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선생으로 두면 실패가 없다.
이런 식의 교류가 시작되고 나서야 우리가 흔히 아는 ‘시골 인심’이라는 게 시작된다. 동네에서 내 마당에 꽃은 피는지, 밭에는 뭘 심었는지, 농사기구는 충분한지, 텃밭 농사가 잘됐는지를 알고 나면 내 밭에 없는 걸 나눠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맘때쯤 이런걸 심는 게 유용하다고 알려준다. 그 말을 귀담아듣는 게 보이면 아예 자기 심을 모종 사면서 몇 개 더 사다 슬쩍 던져 주고 어떻게 심으라고 일일이 코치도 해준다. 그 앞에서 호미질이 어설프면 뺏어다 대신 심어주며 내내 잔소리를 쏟아낼 수도 있다. 그러곤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번에 저 밭에 심은 오이 내가 가져다줬잖아. 호미질도 잘 못해서 아예 내가 심어 줬어.” 그러고 나면 이젠 수시로 옥수수며 씨감자며 가지며 담장을 넘나든다.
사생활이라며 딱 선을 그어놓고 ‘시골 인심’이 없어졌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 인심은 내가 먼저 문을 열어야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