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스막골 Aug 10. 2023

그스막골에 비가 내려요.

그스막골에 비가 내려요. 여러분들은 "집 보러 가야 해"라는 말 기억하세요? 어릴 때 엄마가 장에 가시며 제게 꼭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동생들 잘 데리고 있고, 엄마 없는 동안 집 잘 보고 있어야 돼." 그때를 돌이켜보면 대답은 찰떡같이 잘하는데 정작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못했던 거 같아요. '도둑이 들어오는지 잘 지켜보라는 뜻인가? 그렇지만 내가 무슨 힘으로 도둑한테서 집을 지키지? 대문도 어차피 다 열어 놓고 나가면서......'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톡 까놓고 말하라면 표현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스막골 살이 햇수로 3년 차. 집에서 오래 나와있으면 '집에 아무도 없는데, 빨리 집 보러 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와서 길이 험해질까 봐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건 아파트에 살 때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하고는 달라요. 집도, 나무도, 꽃도, 열매도, 뽀송이도, 병아리도, 현관에 둥지를 튼 때까치 가족이 얼마 전에 부화해서 낳은 새끼들도 다 눈에 밟혀서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해요.


오늘도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다며 어제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제법 거세졌어요. 닭장에 가서 창문도 내려주고, 같이 비를 피하고 있는 참새들도 넉넉히 먹으라고 사류 듬뿍 부어주고, 가지고 나오던 계란 중에 하나는 강아지 주며 물그릇에 새 물도 떠다 주고 들어왔어요.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청소할 거리도 잔뜩 생길 테고 마당에 잡초가 또 발목을 휘감아 올라 예초기를 들어야겠지만 내일도 모레도 나와 함께 있어줄 마당의 감나무가 굳건히 비바람을 견디는 걸 보면서 괜히 마음이 든든해져요.


거칠어진 자연 앞에서 한 없이 무력하지만 서로 의지하는 생명들이랑 올망졸망 몸을 붙이고 함께 온기를 나누는 삶이 있어서 그스막골이 좋아요.


비가 와도 바깥잠을 자는 상남자 그스막골 뽀송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스막골에 살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