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스막골 Sep 28. 2023

몽이의 시선 3 - 꿈

아~함. 벌써 아침인가? 너 부지런하구나? 벌써 왔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 여자를 처음 만난 날을 이야기했던가. 그날 이후로는 행복하게 살았냐고? 글쎄. 모든 만남이 그렇듯이 처음엔 좀 삐걱대기 마련이야.     

 

처음엔 언제 다시 농장으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낮에는 아무것도 못 했어. 이 넓은 곳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면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그 여자가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나를 여기 가둬놓고 사라진 건가 싶어서 구석에서 덜덜덜 떨고 있다가 여자가 집에 오면 잠들 때까지 쫓아다녔지. 불이 다 꺼지고 그 여자도 자리에 누우면 오늘은 내가 농장에 가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그때 서야 배가 고파지더라고. 그럼 부랴부랴 밥을 먹고 그 여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지켜보다가 잠이 들었어.     


그러면 꼭 농장 꿈을 꿨어. 다시 그곳에 끌려가서 커다란 개들 사이에 끼어서 사료 부스러기만 주워 먹던 꿈.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지금은 그 꿈 안 꾼 지 한참 됐으니까.     


그런 꿈을 꾸다가 새까만 밤중에 깨면 난 다시 그 여자한테 뛰어갔어. 그리곤 가슴 위에 올라가 방방 뛰었지. 내가 농장에 있지 않다고. 이 여자랑 함께 잠들었다고. 이게 현실이라고. 그걸 확인해야 하니까 여자가 내 앞에서 살아나야 했거든. 나는 너무 작아서 그렇게 온몸으로 뛰어야 그 여자가 일어나잖아.     


돌아보면 이 여자도 내 귀족적인 면모에 반한 게 틀림없긴 해. 몇 달 동안 새벽마다 내가 가슴에서 뛰어도 한 번도 화를 안 냈거든. 그 후에도 내가 아무리 소변 실수를 하거나 변덕을 부려도 내 말을 잘 들었지. 그래서 나는 이 여자를 내 집사로 임명하기로 했어.      


집사가 뭐냐고? 넌 평민이라 잘 모르겠구나. 잘 들어봐. 너도 언제가 영광스러운 집사가 될 수도 있을 테니. 집사는 나의 모든 의식주를 보살피고 틈틈이 간식을 제공해야 해. 내가 귀찮을 때가 아니면 항상 내가 기대거나 안겨있을 수 있도록 편안한 자세를 잡아야 하고 특히 집사가 의자에 앉을 때는 무조건 나를 무릎에 올려놔야 해.     


이런 건 어떻게 가르쳤냐고? 물론 우리는 말이 안 통하지만 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지. 예를 들어, 나는 아직 졸려서 조용히 쓰다듬을 받으며 거실에 누워있고 싶은데 집사가 청소기를 돌리고 시끄럽게 할 때가 있거든. 그럴 때 나는 방금 청소한 곳에 오줌을 싸. 그러면 그걸 닦기 위해 집사가 주저앉잖아. 그럼 재빠르게 무릎에 올라가는 거야. 또는 새 이불을 쓰고 싶다면 바로 헌 이불에 오줌을 싸는 방법도 있고.     


어! 우리 집사 깼다. 너 그만 가. 난 이제 바빠.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몽이의 시선 2 - 목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