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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Sep 27. 2023

몽이의 시선 2 - 목욕

안녕. 오랜만이야. 뭐? 하루밖에 안 됐다고? 너희 인간에게 하루는 내게 7일과 같아. 그러니 오랜만이지. 너 참 모르는 게 많구나. 

          

어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맞다. 내 집사를 만나기 전 이야기를 했지.    

       

그 나쁜 놈 말이 맞는다면 내가 농장을 나온 건 3살 반일 때야.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거의 스무 살이지. 이미 아동기, 청소년기 다 지나서 만난 거야. 그런데 문제는 나이랑 내 사회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지. 나는 엄마도 아빠도 없이 이 모든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거든.          

날 데리고 간 인간은 여자였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들어가더라. 내가 정말 작다고 얘기했던가. 나는 목욕에 아주 안 좋은 추억이 있어. 내 몸은 너무 작고 눈은 너무 크다 보니까 목욕만 하면 눈에 거품이 들어가고 코에는 물이 들어갔거든. 자기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간들이 매번 바뀌어서 들어오니까 나는 죽을 맛이었어. 그런 인간들이 내 털을 깎을 때는 매번 귀 끝을 베이거나 발톱에서 피가 나는 일이 생겼거든.           


그래서 목욕만 시작하면 나는 너무 무서워서 사지가 뻣뻣해지곤 해. 이번에도 그랬지. 이 여자도 나를 가지고 연습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무서워서 눈이 터질 듯이 튀어나올 만큼 긴장하고 있는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옷 입은 그대로 나를 자기 가슴에 안더라고. 그리곤 손으로 물을 떠서 천천히 내 몸에 묻히기 시작했어. 그날 나는 샤워기 소리를 한 번도 듣지 않고 그 여자 가슴 위에서 목욜을 했다니까. 덕분에 그 여자는 옷을 다 버리고 말았는데도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어.     

      

지금도 기억나. 그 여자가 흥얼거리는 소리. 내가 엎드려 있는 그 가슴에서 전달되던 심장 소리. 등위에 올려지던 따뜻한 물이랑 한 번도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던 그 여자의 눈길 같은 거 말이야.     

     

음. 이 기분을 좀 더 음미해야겠어. 다음 이야긴 내일 하자.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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