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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스윗 May 08. 2023

나는 서울 사투리로 말합니다.

ft. 경상도 사투리

서울 여자의 거제도 신혼생활

우리 부부는 서울이 고향이다. 나는 남편 직장으로 인해 결혼과 동시에 경상남도 거제시로 가게 되었다. 20년 전에는 주변에서 거제도도 차로 갈 수 있냐고 물을 정도로 그곳의 환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었다. 그런 낯선 곳으로 가려니 마음속의 생각들이 설렘과 두려움으로 복잡해졌다.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가서 살아야지' 하고 여기다가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난 뭘 하지?' 하며 몇 번씩 갈팡질팡 마음을 잡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신혼 생활은 시작되었고 하루하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위층에 또래 친구가 살고 있어서 친분을 쌓아 갈 수 있었다.


소통이 쉽지 않은 대화가 시작되다.

나는 친구와 자주 만났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의지할 곳은 남편 말고는 없었으니 아직 어색한 친구였지만 내가 먼저 다가갔다. 그러나 대화를 하면 소통이 쉽지 않았다. 서울 여자에게 경상도 사투리란 두꺼운 장벽과도 같았고 친구가 말을 할 때마다 난 다시 되묻기를 수차례 해야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루는 힘든 일을 하고 대화를 하는데 "오늘 너무 대다 대" 친구가 말하자 나는 " 응? 뭐라고?" 물으면, 다시 친구는 "대다고 아니 피곤하다고" 그때서야 내가 " 아~ 피곤하다고" 하며 알아들었다.

또 어떤 날은 무슨 물건을 보고 나면 "짜달시리, 뭐한다꼬 파이다" 연속으로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빛의 속도로 말하였다.

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한 채 눈치껏 " 아 그래? 아.." 알아듣는 척하며 상황을 넘겼다.

문제는 친구도 나의 작은 목소리와 조곤조곤한 어투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친구를 지칭할 때도 애들이라고 표현하며 "엄마, 오늘 애들 만날 거야" 얘기하면 당연히 엄마는 알아듣곤 하셨는데 거제도 친구에게 서울 친구들 얘기를 하면 "거기 애들은 이것저것 해"라고 말하자 친구는 "애들?"이라고 다시 내게 되묻곤 했다. 친구는 어린아이들을 일컬어 말하는지 알았던 것이다. 이렇듯 서로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동안 경상도 사투리가 불편하고 어색했는데 친구를 만날수록 나도 '서울 사투리를 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알아듣지 못하는 같은 말속에  다른 말을 사용하던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는 다 똑같다?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생활했던 나는 그전까지 경상도 사투리는 다 같은 줄만 알았다. 다른 부산친구, 대구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각각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억양의 높낮이였다.

거제도의 억양이 가장 세게 느껴졌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밤에 창문을 활짝 열고 있던 날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것이다. 저층에 살던 우리 부부는 함께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냥 대화하며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분명 싸우는 소리인 줄만 알았던 나는 '웬일이야'라며 연발했다. 그때의 놀라움과 신기함은 한동안 뇌리에 남았다.

부산억양은 거제도의 억양보다 듣기가 수월했다. 물론 높낮이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았고 내 귀에는 좀 더 편하게 들렸다.

대구억양은 부산보다도 더 수월하게 들렸다. 대구친구가 워낙 애교가 있고 부드러운 친구여서 그랬을까 아무리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고 해도 여성스러움이 억양에 묻어났다.

어느 날 각 지역의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는 날이면 억양이 다르고 소리도 점점 커져서 듣고 있는 나는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끼리는 억양의 높낮이의 다른 점을 얘기하며 '맞다, 아니다, 그렇다.'를 깔깔대고 말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이 있으면 친구들은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중에 자주 쓰이는 말은 이런 게 있었다.

그저께 : 아래께 , 레몬이 시다 : 쌔그럽다 , 많다 : 천지삐까리 , 별로다 안 좋다 : 파이다 , 그래? : 맞나?

이렇게 새로운 사투리를 들을 때는 영어를 들을 때처럼 해석이 필요했다. 나의 서울 억양과 말도 친구들은 적응이 필요했고 우리는 아리송한 말들을 서로 물어가며 서로의 사투리에 익숙해져 갔다.

거제도에 산지 몇 해가 지난날 엄마는 나의 말을 들으시며 " 얘 너도 경상도 억양 나온다."라고 말씀하셨다. 난 엄마에게 "내가? 아니 나 안 썼는데.."라고 말했지만 이미 그곳에서 생활 한지 오래된 나는 나도 모르게 억양이 나오곤 했다.


경상도는 의리 아니가!

우리 친구들은 거제, 부산, 대구, 할 것 없이 의리 하나는 끝내 주었다.

난 그래도 서울깍쟁이 같은 면이 있어서 내 것을 잘 챙기는 편이었는데 경상도 친구들은 정도 많고, 잘 나눠주고, 챙겨주기가 항상 몸에 배어있었다. 예를 들면 혼자 집에 있을 때 연락해서 친구들 만남에 불러주고, 끼워주고, 먹을 것 챙겨주고,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알고 지내는 친구들은 다 비슷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의리 아니겠나


선입견을 지우자

처음 신혼생활을 시작할 무렵 적잖이 어렵고 적응 안 되던 게 사투리의 억양과 말이었다. 그러나 친구들 조차 나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고 서로가 시간이 지나면서 알아가며, 이해하고, 적응해 갔다.

이제 거제도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생활하지만 불편하던 경상도 말들이 익숙하고, 가끔은 왁자지껄 대화하던 소리도 그리울 때가 있다.

우리는 각 지방마다 사용하는 사투리의 말이 조금씩 다르고 표현과 뜻도 다르다. 각각 쓰는 말과 억양이 달라도 같은 생김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지우면 모든 것이 같다는 것을 안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다가도 같이 보이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서울 사투리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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