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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스윗 May 23. 2023

영락없는 한국 사람

김치만 찾는 아들.

"엄마! 김치 없어?!"

아들은 저녁밥을 먹다 말고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애타게 불렀다.

"거기 김치 있잖아!"

"아니! 이런 거 말고 그냥 김치 달라고"


식탁 가득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구워 내고, 어머니가 주신 알싸하고 새콤한 파김치와 씹을 때의 아삭하고 상큼한 오이소박이, 시원하고 깔끔하게 먹는 열무물김치를 각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주었더니 아들은 그 많은 김치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블로그 글을 쓰려고 빨리빨리 움직이던 나는 부리나케 김치냉장고에 있는 배추 김치통을 꺼냈다.

무거운 도마를 꺼내기 싫어 김치 뚜껑을 열고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가득 묻은 배추 반포기를 가위로 쓱쓱 잘랐다. 그 가운데에 가장 아들이 잘 먹는 하얀 배추 줄기의 가운데 부분만 접시에 담아 주었다. 그때서야 만족하는지 아들은 '으음' 무언의 '됐다'라는 대답을 하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평소에도 배추김치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라면을 먹을 때나, 심지어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도 아들은 꼭 김치를 찾아댔다.

김치맛은 기똥차게 알아서 언젠가 친정엄마가 해주셨던 김치가 무엇 때문인지 아삭한 맛은 사라지고 물컹거리는 게 아닌가, 모르는 척 조금 꺼내어 주었더니 대뜸 한 젓가락 먹으면서 하는 말이 "으.. 이 김치는 맛이 이상해"라고 하는 것이다.

난 속으로,

"이그 귀신이네 귀신! 맛도 잘 알아"

"그냥 먹어!" 결국 한 소리 하고 말았다.


딱히 까다로운 편이 아닌 아들은 유독 배추김치에는 주관이 뚜렷하다.

오래전 필리핀으로 잠시 아들과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김치 같은 김치 아닌 김치가 나왔었다. 양배추로 만든 김치도 주셨다가 빨간색 김치도 주시고, 그보다 사정이 좋은 날엔 오리지널 가까운 김치도 나왔는데 그때도 아들은 '구시렁 시큰둥'대며 아쉬운 대로 먹었다.


과연 배추김치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음식이길래 항상 찾아대고 없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인지 아들을 통해서 문득 심오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몇 가지의 김치 종류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배추를 버무려 만든 김치만 찾는 아들을 보며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진정 꼭 필요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몸이 아파 입속이 써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 날 약을 먹기 위해 밥 한 숟갈 물에 말아 김치만 놓고 밥을 먹으면, 어느새 쓴 맛만 나던 입속도 물밥과 양념 가득 김치로 어우러져 술렁술렁 잘 넘어간다.

두 번째, 출출한 어느 날 반찬은 김치만 있고 밥은 없는 날, 라면 한 개 펄펄 끓여 덩그러니 김치만 놔두고 먹어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만족감이 내 안을 가득 찬다.

세 번째, 갓 지은 쌀밥 한 공기 포근하게 담아 가위도 칼도 필요 없이 기다린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는다.

다음 진행은 알다시피 밥 위에 턱턱 얹어 먹으면 그보다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그런 공식이 문득 생각난다. 흰쌀밥은 김치, 시원한 맥주엔 새우깡.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겠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여기까지 김치 글을 쓰다 보니 참으로 중요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무엇보다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김치를 옆에 나라에서 '파오차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까지 붙이며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것을 볼 때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날 지경이다.

내가 화가 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지만 우리 아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인 배추김치를 우리의 농산물로 만든 것들로 맛깔나게 먹이고 싶다.

아들이 쏘아 올린 배추김치 일로 우리나라가 김치 종주국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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