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코로나 소식이 심상치 않다. 하루 확진자가 10만명이 넘어가고 있고, 마스크 대란을 연상시키는 자가키트 품귀현상에 재택치료에 대한 시민들의 어려움들을 여기서도 들으면서 나 역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양가 부모님과 소중한 사람들이 다 한국에 있기에 어서 빨리 한국의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충분히 퍼질만큼 퍼지고 나면 분명 좋아질것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이제 한국도 진정한 '위드코로나' 의 상황으로 가겠다는 희망적인 생각들도 하게 된다.
12월 중순부터 영국에 불어닥친 '오미크론' 광풍은 기세를 점점 더해가더니 1월 중순엔 정점을 찍어 하루 확진자가 17만명 이상이 쏟아져 나왔다. 이 확진자 수가 실감나게도 내가 아는 얼마 되지도 않는 지인들은 거의 다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아이 학교의 학생들은 걸리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날은 30명 정원에 15명도 채 등교하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이렇게 활개를 치는 오미크론은 우리가족을 피해가지 않았다. 작년 12월 21일에 내가 먼저 확진되고, 당시엔 음성이던 남편과 아들도 이틀 후 23일에 확진되면서 결국 온 가족이 코로나와 함께 연말을 보내고, 2022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몸이 유난히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주일 저녁, 집에 있던 자가키트로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키트에 붉은 두줄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서도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이 도통 실감나질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어이가 없었다. 진짜 이 키트에 두줄이 나올수도 있구나..... 영국에서 홀로 마스크도 열심히 썼는데 내가 왜 걸렸지..?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만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2층에서, 남편과 아들은 1층에서 생활하며 재택치료에 들어갔다. 말이 재택치료지 한국서 챙겨온 타이레놀과 종합감기약을 싸들고 2층 안방에 누워 생활하는 것이 재택치료의 전부였다.한국에서라면 정말 말도 안된다 싶어 펄쩍 뛰었겠지만, 영국에 와서 병원에 가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것보다 백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오자마자 알아버렸기에 오히려 큰 갈등이 없었다. 집에 있으면서 '파라세타몰'(타이레놀 계열의 진통제)을 먹으며 버티라는 게 영국의 공식적인 코로나 대응법이기도 하고.
처음 확진사실을 알고 2층 안방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정말 오만 생각을 다 하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확진되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한국에선 코로나 감염보다 만약 걸린다면 동네 사람들 얼굴을 어찌 봐야할지 그게 가장 걱정이 되어 그야말로 전전긍긍하며 생활했었다. 발 없이 천리를 가던 코로나 확진자의 신상은 만 하루면 온 동네에 퍼졌다. 그땐 혹시 코로나에 감염되면 이사를 가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반면 영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확진되면 그저 주위에 알리고 스스로 자기 집에서 격리하며 치료하면 그뿐이다. 10일의 격리기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생활에 어려움 없이 복귀한다. 아무도 확진자를 향해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poor" 한마디로 나름의 위로를 전할 뿐..코로나를 독감처럼 여기며 그야말로 '위드코로나' 하는 영국의 분위기는 확진된 후 두렵고 복잡했던 내 마음의 무게를 그나마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PCR 양성이 나오면 NHS(영국국민보건서비스)에서 발송된 문자의 링크를 통해 며칠간의 동선을 기록하게 되어있지만, 강압적이지 않고 내 동선이 타인에게 공유될 일이 없으며, 그저 내 자신이 어디에서 걸렸는지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에 목적이 있었으므로 크게 부담이 되질 않았다. 확진자 홍수의 시기에 코로나 확진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 내가 누구에게 걸렸고 어디서 걸렸으며 내 밀접접촉자는 누구인지 밝혀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조심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이젠 누구든 어디서든 걸릴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오미크론이 지나가고 나면 한국도 이젠 코로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재택치료' 라는 것에 대해 영국에 와서도 한없는 거부감을 가졌던 나지만, 막상 확진되어 직접 재택치료를 해보니 이 또한 왜 이 나라에서 권유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어짜피 코로나 그 자체로는 치료제가 대중화 되어있는 경우가 아니다보니 병원에 가더라도 딱히 도움받을 부분이 없다. 병원에 가도 진통제나 종합감기약을 받을 수 있을 뿐이라면 내게 익숙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경증일땐 집에서 치료하다가 만약 갑자기 중한 증상이 발현될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과 절차만 잘 확립된다면 분명 재택치료는 꽤 효율적인 방식의 치료방식이 될 수 있다.
물론 재택치료는 사실 한국에 적용되긴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집은 대개는 2층의 하우스 형식으로 되어 있다.(물론 하우스가 아닌 다른 형태의 주거방식도 있다) 우리집도 1층과 2층이 나뉘어져 있고, 화장실도 각 층에 따로 있어서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확실한 격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1층과 2층을 계단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대면 없이 각각 통채로 사용할 수 있으니 그리 답답하지 않고, 집 안에 가든도 있어 때로는 바깥 공기를 쐴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열흘간의 격리시간이 그리 힘들지 않게 흘러갔다. 만약 한국의 우리집에서 격리했다면 어땠을까? 그 좁은 집에서 복작복작대며 지내야 하는데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완전한 격리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아파트 주거 특성상 훨씬 더 심한 답답함과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실제로도 지금 한국에서 확진자와 비확진자 구성원들의 분리가 어렵고, 갑자기 중증으로 진행될 시 대처법이 불확실 하다는 점이 재택치료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한국서 자택치료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 점을 잘 알기에 한국의 지인들에게 '재택치료도 괜찮더라' 는 말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10일간의 코로나 재택치료 기간을 되돌아보면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의 증상은 '경증' 에 속했다.
나 같은 경우, 가장 주된 증상은 몸살증세와 불편감이 느껴질 만큼의 가래였다. 영국와서 넘어져 다친 골반과 다리가 가장 아팠는데 다행히 타이레놀로 진정될 수준의 증세였다. 고열은 없었다. 미열이 한두번 올랐을 뿐... 대신 피로감이 어마어마해서 3일정도는 거의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늘어져서 잠만 내리 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4일 정도가 가장 힘들었고 그 이후엔 넷플릭스도 간간히 보고, 그동안 못봤던 화제의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도 내리 정주행할만큼 상태가 호전되어 갔다.
남편의 경우는 그래도 38.5에 달하는 열이 좀 났었고, 몸살증세도 동일하게 동반되었다. 가래와 기침도 있어서 사실 나보다 좀 더 상태가 좋지 않았고 거기다 평소에 좋지 않았던 허리가 그렇게 아팠다고 한다. 아마 몸에서 평소 좋지 않은 부위를 바이러스가 공략하는 듯한 느낌?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성에게 좀 더 격하게 발현한다는 연구결과를 읽고 걱정한 적이 있는데 그나마 다행히 타이레놀로 열과 몸살기운이 잡힐 정도여서 병원에 가야 한다던가 하는 심각한 일은 없었다.
만 7세의 우리 아들의 경우, 거의 무증상에 가까웠다. 간간히 아주 간간히, 기침 한두번 하는 정도?정말 어린아이들은 약하게 하고 지나가는게 맞는 건지 그나마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지내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던 격리기간이었다.
우리가족의 경우만 보아선 오미크론은 '전파력은 강하지만 증상은 심하지 않다' 는 말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얀센' 으로 백신접종을 하고 영국에 왔고, 부스터샷은 맞지 않은 상태로 확진되었는데 백신을 맞았기에 경증으로 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백신을 맞고 꽤 심한 부작용을 겪었던 내 경우엔 코로나 증상은 그에 비하면 훨씬 경미했다. 그런 부작용의 위험을 떠안고 부스터샷을 또 접종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걸린 이후에도 여전하다.
코로나 시국 속 한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 다 생활했고, 거기에 직접 확진되어 코로나를 온몸으로 겪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어느 나라의 정책도 완전하지 않다' 는 것이다.
한국에서 최대한 조심하며 지내다 도착해서 맞이한 영국의 모습은 마치 코로나 이전의 세상 같았다. 우리가족 말고는 마스크 쓰는 이가 없어보일 정도였고, 식당과 유명 관광지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한국의 대응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최선이라 생각했던 나는 처음엔 영국의 재택치료 방식을 걱정했고, 집에서 해보라고 나눠주는 공짜 자가키트를 못미더워 했으며 정부가 내놓는 플랜 b 따위의 정책을 무시했는데, 알고보니 정부가 2번이나 락다운(생존에 필요한 곳-병원, 마트, 약국 등- 이외에는 전부 문을 닫는 정책)을 시행하며 나름대로 얻은 교훈으로 영국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확진자는 쏟아졌지만, 여기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가 흘러갔다. 결국, 어디든 그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은 굴러가게 되어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방역정책도 좋은 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영국의 방식이 한국에 도입됐으면 하는 점은 자가키트 무료지급과 PCR 검사를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다. 영국은 NHS 앱을 통해 코로나 자가키트를 신청할 수 있는데, 빠르면 2~3일 안에 집으로 키트를 무료로 배달해준다.(물론 앞으로 세금이 오를 것이고, 곧 무료지급이 종료된다는 소문도 있긴 하다) 작은 박스안에 6번 검사할 수 있는 면봉, 시약, 검사키트가 들어있다. 한국은 지금 자가키트를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그리 싸지 않은 가격에 사야한다고 들었는데, 자가키트 지급이 원활하게 된다면 방역이나 국민들 개인들의 불안감을 낯춰 주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국은 PCR검사를 하러 검사장에 가도 실제 검사는 본인 스스로 해야한다. 다시말해 한국처럼 내 코를 찔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것도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오히려 스스로 검사하니 그리 아프지 않게 검사할 수 있어 더 좋았다. 한국처럼 깊이, 아프게 찌르지 않고 코 안쪽을 슬슬 돌려주기만 해도 결과가 정확히 나온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알았다. PCR 검사를 스스로 하게 하면 나라 입장에서는 PCR 검사하는 인력을 다른 곳에 배치할 수 있어 인력낭비를 막을 수 있고, 검사자의 입장에서도 덜 아프게 검사를 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은 점이 아닐까 싶다.
17만을 향해 치솟았던 확진자는 이후로 점차 줄어들어 오늘 기준 영국의 확진자 수는 3만 8천명이다. 며칠 전 신문에는 입원한 중증환자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기사도 나왔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권고, 백신패스 사용 등의 규제를 없애더니 곧 확진자 자가격리마저도 없애는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사람들의 의식으로 보나 정부 정책으로 보나, 영국은 이제 정말 완전한 '위드코로나' 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미크론이 경미한 증상을 띄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해진다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 있기에.... 재택치료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하나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저 '걸려도 괜찮더라' 고 말하기엔 이 코로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걱정스럽고, '위드코로나' 방식이 맞다고 함부로 말하기엔 정말 무엇이 옳은 방법인건지 여전히 확신이 서질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국도 곧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디 이 오미크론의 광풍에 너무 많은 이들이 어려워지지 않기를, 한국이 좋아지는 시기가 영국보다 훨씬 훨씬 빠르기만을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