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간만에 날씨가 화창했던 날
(1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영국에 오기 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위 '카더라 통신'에 해당하는 정보(?)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영국은 날씨가 정말 별로래'라는 이야기였다. 비가 주야장천 온다더라, 해가 거의 없다더라, 흐린 날씨에 습기가 가득하고 엄청 춥다더라, 우산을 잔뜩 사가라 등등 각자의 언어로 전달하는 문장은 달랐지만 결국 결론은 같았다.
'영국은 날씨가 정말 별로래'
심지어는 비가 자주 와서 습기가 많은 날씨 탓에 진흙이 늘 가득히 널브러져 있어 도로가 지저분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기 전 미리 혹독한(?) 시뮬레이션을 겪은 탓인지 영국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영국 날씨에 대해 큰 기대나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안 좋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영국 날씨는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리 엄청나게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오래 사신 분들의 표현에 의하면 그래도 내가 좋을 시기에 입국했다고 하셨는데, 내가 도착한 8월 말은 비가 오는 날 보단 화창한 날이 더 많았고, 오히려 햇빛은 한국보다 강하다고 느껴져서 반팔 차림에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외출해야 될 만큼 뜨거운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10월이 되기 전까지는 해도 적당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오히려 작열하는 서울의 더위를 생각하면 반가움이 느껴질 만큼의 좋은 날씨들이 이어졌다.
살다 보니 바깥 날씨는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영국은 집 안도 춥다는 것이었다. 10월 말이 되고 11월이 되자 한국도 그렇듯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이 기온이라는 게 표면적인 온도는 영상 10도를 웃돌았으나 체감온도는 그렇지가 못했다. 뭔가 땅의 축축한 습한 기온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처음으로 춥다고 느꼈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밖에서 이런 습한 느낌이 든다면 집에 들어와서는 따뜻해야 좋을 텐데 한국과 다르게 온돌이 없는 데다 지어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하우스 형태의 영국집은 실내도 서늘한 기온이 감돌았다. 방마다 라디에이터가 벽면에 붙어있긴 하지만... 근처에 가 있어야 겨우 온기를 느낄 정도이지 온 방이 훈훈하다는 느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악명 높은 영국의 물가 때문에 그마저도 마음껏 틀 수가 없다. 보일러 조절장치로 타이머를 맞춰놓고, 가족들이 다 모이는 밤 시간대 잠시 몇 시간, 잠에서 깨기 전 한두 시간 트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국에서 보내는 첫 해의 겨울은 누구나 추위에 떨며 보낸다고 여기 사시는 분들이 조언해 주셨는데, 정말 첫해여서 그런지 처음엔 이 낯선 추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한국의 겨울은 밖에는 영하 1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지만 적어도 집에 있으면 뜨거운 보일러 덕분에 춥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겨울을 지냈었다. 오죽하면 히트텍이니 극세사 수면잠옷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 집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11월은 나름의 월동준비를 하느라 킹스턴 시내를 여러 번 오간 것 같다. 외출복을 위한 쇼핑이 아닌 오직 집에서만 유용한 실내복을 위한 쇼핑이라니..... 얇은 실내복만 입고 가볍게 집을 돌아다녔던 것은 옛 시절이 되고, 우리 세 식구는 집에 와서도 내복에 양말에 수면잠옷도 모자라 위에 가디건까지 뒤집어쓰고 12월을 지냈다.
그나마 좀 다행이었던 것은 한국은 영하의 기온이 일정 시간 유지된다면, 여기 날씨는 그렇진 않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아주 춥다가, 뜬금없이 가을날의 기온이 돌아오기도 하는 등 우리 가족들이 이 추위에 적응할 만한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11월이 지나 서머타임이 해제되고, 추위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이젠 너무 이른 일몰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아이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며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볼 때의 황당함이란....3시만 지나도 어둑어둑해지고, 아주 추운 날씨가 아니어도 햇살은 보기 힘든 것이 되었으며 나는 월동준비에 이어 온 가족 비타민 d를 준비해야만 했다.
새해가 되고 2주간의 방학 후 아들의 개학날인 오늘, 학교에 보내 놓고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는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환한 햇살이 온 가든을 내리쬐고 있었다. 사진에는 표현이 잘 안됐지만 이 정도면 영국에선 거의 여름 뙤약볕 수준이다. ㅋㅋㅋ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영국에 처음 와서 마주쳤던 낯설음이 이젠 익숙함이 되고, 어려웠던 마음들이 녹아내려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오늘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서 새삼 들었다.
아직도 추위가 끝나려면 멀었다고, 영국은 늘 춥다는 영국 카더라를 여기 와서도 늘 들으며 살지만
그래도 언젠간 영국의 겨울도 끝나고 곧 봄이 오리라... 우리가족의 영국에서의 첫 번째 봄을 애타게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