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투표하기 - 20대 대통령 선거
5년이라는 시간은 단어만 놓고 보면 길게 느껴지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참 짧은 시간이다. 2017년 벚꽃대선이라며 남편과 같이 사전투표했던 기록이 아직도 SNS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건만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할 해가 되었다.
한국은 3월 9일, 이틀 전 본 선거가 치뤄졌지만 재외투표는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6일간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투표했던 대선이었고, 한국과는 다른 시차에, 아주 박빙이던 선거 결과 덕분에(?) 출구조사부터 당선인 발표까지 쭉 개표방송을 보았다는 점 등등 여러모로 20대 대선은 내게 잊지 못할 선거가 될 것 같다.
한국에는 가까운 곳에서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영국 재외투표의 경우 대사관에 가야만 투표를 할 수 있다. 대신 주말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투표를 할 수 있어서 26일 토요일 온 가족이 처음으로 대사관 나들이를 했다.
주영국대한민국 대사관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는 버킹엄 궁전 근처에 있어서 찾아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사관 앞에 도착하자마자 보였던 태극기. 오랜만에 태극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
내가 언제 재외국인 신분으로 해외서 투표해 볼까 싶어 대사관 앞에서 인증샷을 꼭 남기고 싶었는데... 모두 다 나와 같은 마음이셨는지 투표 끝내신 분들이 거의 이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계셨다.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 친절한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소소하게 가방 x-ray 검사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투표장으로 올라갔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워서 바깥에서 잠시 줄을 서서 대기했지만 한국인다운 대사관 직원들의 빠른 일처리 수행능력 덕분에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투표방식은 한국과 거의 똑같았다. 신분증으로 신분확인을 꼼꼼히 하고, 패드에 서명하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투표한다. 한국에서는 투표용지를 접어서 투표함에 넣기만 하면 되었지만, 여기서는 내 주소지가 적힌 봉투에 투표용지를 넣고 직접 밀봉해 투표함에 넣는다.
그저깨 개표방송을 통해 한쪽은 승복선언과, 한쪽의 당선소감 발표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선거는 어쩌면 전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대선의 결과는 각 당은 물론, 국민과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 그러하듯 냉정하게 말해 현실적으로 '졌지만 잘 싸웠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이긴 쪽은 인수위를 조직하고, 진 쪽은 지도부들의 사퇴가 이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선거는 또 치뤄진다.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엎치락뒤치락 결과의 기쁨과 슬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우리나라 정치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그 결과는 우리 국민들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나는 이것이 선거가 우리에게 주는 당연하면서도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치에 회의론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거날만큼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러 투표장으로 향하는 것은 선거의 이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고,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 고작 몇분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이 과정이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님을 우리 국민들은 지나간 역사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선거 과정은 비록 전쟁같았으나, 전쟁같은 선거가 드디어 끝났으니 이젠 모두가 화합하고 화해의 길로 함께 걸어나가길 소망해본다. 제발, 부디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거는 또 돌아온다는 것을 양쪽 모두 잊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