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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Jul 25. 2022

어서와, 메니에르는 처음이지?

타국에서 메니에르와 조우한 이야기

 영국살이의 가장 불편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병원"을 말하겠다. 여태 한국에 살면서 내 증상에 맞는 전문의의 진료를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왔고 동네병원의 진료에 예약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그야말로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최상인 환경에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영국에 와서야 깨달았다. 보건소도 있지만 개인병원이 많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긴 NHS라고 하는 국립의료제도에 등록을 하면 거주지에 따라 가까운 GP(General Practitioner)로 배정을 해준다. 만약 몸에 이상이 생기면, 등록된 GP에 예약을 해서 진료를 본 후, 좀 더 깊이있는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때서야 각 과의 specialist의 진료를 연결해 주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긴지 오죽하면 specialist를 보는 날이 될 쯤엔 병은 더 악화되던지, 아님 자연치유되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영국도 물론 private hospital 이 존재하는데 진료비가 전액 무료인 NHS에 비해 진료비가 정말 비싼편이라 이용하기가 쉽진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사보험을 들기도 하는데, 보험료 납부액에 따라 이용 한도가 정해져 있단다. 주재원으로 온 우리 같은 경우, 회사에서 꽤 괜찮은 사보험을 가입해줘서 아무래도 NHS GP 보단 PRIVATE GP를 이용하게 된다. 


  영국에 온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돌아보면 건강에 대한 이벤트가 없진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그때마다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겠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병원 가는 일이 사실 꽤 번거로운 일이어서 정말 꼭 가야할 게 아니면 그냥 한국에서 챙겨온 비상약들로 해결하곤 했는데 5월로 접어들면서 이상하게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꼈다. 어딘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늘 기력이 딸리는 듯한 느낌이랄까....그땐 평일 내내 아이가 학교에만 가면 늘 밖으로 나갔고, 돌아와선 아이 학교 픽업에 학원을 오가며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등의 빡빡한 일정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외출을 좀 줄여야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줄지않는 피로감을 느꼈으나 뭐 별일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던 중, 아이를 데리고 맥도날드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갑자기 오른쪽 귀에 기분나쁜 통증이 느껴졌다. 혹시 중이염인가.. 하는 찰나, 갑자기 급격하게 속이 울렁거리면서 뱅글뱅글 도는 듯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아이 점심은 먹여야해서 겨우 주문한 햄버거를 먹인 후 집으로 급히 돌아왔는데 그 길이 마치 천리처럼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여기서 쓰러지면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겨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누웠는데도 계속 어지러웠다. 마치 배멀미 하는 느낌이랄까? 천장이 뱅글뱅글 돌진 않았지만 내 눈은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쯤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지럽기 전 귀가 아팠던 게 마음에 걸렸다. 주변에 귀에 문제가 생기면서 어지럼증으로 고생했던 지인들이 몇몇 있던 터라 하나 의심되는 질환(?)이 있긴 했다. 


지금이야말로 PRIVATE GP를 이용해야 될 시점! 남편에게 부탁해서 당장 전화로 예약을 잡았다. 몇분의 진료를 해주고 한화로 약 16만원 정도의 진료비를 받는 이 병원은 NHS GP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바로 다음날 오전으로 빠르게 예약을 잡아주었다. 토요일이니 진료비가 더 비쌀 것이라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의사의 진찰 결과, 약한 중이염으로 인해 발생한 어지러움, 즉 메니에르였다. 귀는 그리 심하게 아프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지러울 수 있냐고 물었더니 달팽이관과 중이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아주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중이염 치료를 위한 소량의 항생제와 베타히스틴을 처방해줬는데, 약으로 충분히 어지럼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니에르란 내이에 발생하는 질환인데 이명이나 이충만감과 함께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주위에 메니에르로 고생하는 지인들이 몇명 있어서 귀가 아프면서 어지러울때부터 혹시 나도 메니에르가 아닌가 싶어 바로 병원을 찾아간 것이었다. 직접 겪은 이들에게 안좋은 이야기들을 하도 많이 들었던터라, 덜컥 겁부터 났다. 의사는 정말 별 것 아닌것처럼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전혀 신뢰가 가질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5월 셋째주에 발병한 메니에르 때문에 7월 말인 지금까지도 베타히스틴을 아침 저녁으로 꼬박 먹고 있다. 의사는 길어야 3주안에 회복될 것이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 다행스럽게도 이명이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귀 먹먹함은 거의 없었지만 귀에 압박이 느껴질 정도의 이충만감이 심했다. 조선시대 가채를 쓰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머리와 목이 너무 무겁고 아팠고 길이 흔들흔들 하는 것 같은 잔어지러움이 제법 갔다. 균형감각도 예전같지 않아서 부엌을 조금만 왔다갔다해도 팽글팽글한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오후가 되면 만사가 귀찮게 느껴질 정도로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아주 심했던 시간이 지나고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예측하지 못했던 '메니에르'는 내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주었는데 우선, 내가 그동안 건강에 너무 무심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메니에르 환자가 하지 말아야 할 세가지로 알콜, 커피, 나트륨(짠음식)을 흔히들 꼽는데 난 술은 입에도 안대는 모태 비음주자이지만 커피는 밤낮 상관없이 기본 석잔은 마셨고, 매운 음식 마니아에 라면과 간단한 인스턴드로 식사를 때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거기에 잠은 늘 늦게 잤다. 한번도 건강을 생각해 음식을 챙겨먹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주식과도 같았던 라면과 커피를 끊었고(지금은 디카페인 한잔 정도는 마신다. 아주 끊었더니 더 머리가 아픈 느낌적인 느낌 ㅋㅋㅋ금단현상 무서운 것이었더라....) 아무리 귀찮아도 최소한의 정성을 들여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잠도 11시 전엔 무조건 잠들려고 노력했다. 

나름 일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찾아온 건강의 문제는 하루에도 몇번이고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잔어지러움이 느껴질때마다 평생 이 어지러움이 사라질 것 같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생겼고, 마음이 위축되니 행동반경도 자연히 줄어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니 결국 나 혼자만 아는 고통이라는 외로운 마음이 엄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예약이 잘 되는 PRIVATE GP에서 약이 떨어지기 전 약을 꼬박 타오는 것 뿐, 한국이라면 흔히 받을 수 있었을 청력검사나 평형검사 같은 것 따위는 해 볼 엄두도 못내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메니에르가 아니었다면 결코 돌아보지 못했을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예민해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타국에서 빨리 적응해 잘 지내야만 한다는 나 혼자만의 압박감.. 아이를 최상으로 케어해야 한다는 오만함.. 아침에 나가 밤에 아무일 없이 돌아오는,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되자 아이러니하게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결국 육신의 문제로 내 안의 연약함을 돌아보게 되었고 다시 한번 두손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내겐 의미있는 광야의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육체적인 건강함이 정신적인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을, 사람에게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한 최근이었다. 메니에르를 통해 갖게된 좋은 습관을 평생 잘 관리하면서 이젠 평생 어지러움 느끼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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