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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Feb 14. 2022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

- 미술 문외한 그녀의 첫 미술관 나들이, National Gallery

(2021년 11월 2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영국발령이 결정되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뭔가 고정된 나만의 루틴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나에겐 이미 적응된 한국의 생활이 아닌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영국살이는 결정된 일, 이왕 3년이나 외국서 살게 되었으니 거기서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두가지가 바로 떠올랐는데 하나는 지긋지긋한 영어울렁증에서 벗어나게 해 줄 영어공부였고, 또 하나가 바로 '미술공부' 였다.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녔었기에 사실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내 삶에서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1년에 두어번 이상은 큰 맘 먹고 대가를 지불한 음악회를 갔고, 취미로 첼로를 했던 터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며 연주를 했던 적도 있었다. 대학때는 '음악의 이해' 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며 어느정도 음악사도 한번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미술은 한번도 그런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미술관은 내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으며 미술사를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미술학원에서 잠시나마 붓을 잡았던 기억이 전부였다. 얼핏 듣기로는 런던은 미술관도 많고, 미술사를 들을 수 있는 강의들도 꽤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도착해보니 정말 너무 쉽게 미술사 강의를 하시는 좋은 선생님을 두분이나 바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가을학기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주 1회 두시간 남짓한 수업시간이 내게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그렇게 미술사 왕초보가 알음알음 강의를 들으며 미술사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관심이 생기고 나자, 이젠 작품을 직접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학기 강의 주제는 사실 '현대미술' 이어서 Tate Modern-현대미술관 을 가는게 수업과는 연관성이 더 많았겠지만... 왠지 현대미술보단 그래도 한번이라도 들어본 작가의 작품 하나라도 제대로 보고싶은 마음에 첫 미술관 나들이로 'National Gallery' 를 선택했다.


National Gallery는 트라팔가 광장 뒤에 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진 광장으로 거대한 분수대와 넬슨탑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다. 코로나 이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미술관은 반드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한 뒤 입장이 가능하다.(관람료는 무료)

<입장 전 시간이 잠시 남아 광장 분수대 앞에서. 아이가 아주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사진.

  오전 10시쯤 된 시간이었는데 하늘이 마치 늦은 오후나 된 듯 흐리다>


미술관에 입장해보니, 한눈에 어마어마한 규모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대를 따라 작품들이 구분되어 있고, 그에 따른 관람동선이 정할 수 있었는데, 사실 우리 가족 모두 미술엔 문외한인데다 첫 방문이니 첨부터 쭉 동선을 따라가며 감상하기로 결정했다.


초기 중세미술은 중세라는 시대적 영향때문인지 종교적인 그림들이 많았다. (그건 일단 지금 내 생각이고 앞으로 공부를 더 하게 되면 자세히 알게 되겠지....)


조반니 벨리니의 <도지 레오나르도 로레단>. National Gallery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데 입고있는 저 비단의 옷이 내가봐도 너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었다. 정말 비단을 잘라 붙인 것 같은 느낌, 거기에 얼굴 입가의 주름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있음.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나같은 문외한도 어디선가 한번은 본 듯한 그림. 부부를 그린 그림이다. 유명한 작품답게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작품. 이번 관람으로 부부 말고도 거울속에 비친 사람의 존재를 자세히 보게되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클로드 모네의 <수련>, 개인적으로 이 그림이 제일 좋았다. 잘은 모르지만 그냥 보고있으니 편안하고 좋았던 그림. 색감하며 좀 거친 듯 투박한 느낌까지...작은 엽서로라도 갖고싶었는데 기념품샵에이 작품은 없었다 ㅠㅠ

드디어 나왔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얼마나 유명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고 유명하다 하니 반강제로 앞에 서서 사진 찍은 아들 ㅋㅋ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몰린 인파만으로도 왠지 고흐의 그림이 있을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림을 다 보고, 오랜만에 시내로 나왔으니 근처에 있는 리버티 백화점에 들러보기로 했다.


1875년 지어진 리버티 백화점은 아직도 설립당시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저 천장의 나무들과 삐걱거리던 계단, 너무너무 고풍스럽던 엘리베이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뭔가 물건을 구경하지 않아도 건물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뭔가 세월이 느껴지고 지난 날들이 몸으로 느껴졌던 리버티 백화점. 여기서 파는 물건들의 가격은 내 기준 전부 다 정말 비쌌다. 문구코너가 있길래 내년 다이어리를 기념으로 사볼까 해서 하나 들어 가격을 살폈더니 60파운드.... 그냥 살며시 내려놓음..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이 나라 분위기 답게 백화점도 뭔가 엄청나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있는 느낌이었다. 

백화점 구경 다 하고 피카델리 서커스 거리로 나오니 여기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조명들이 즐비하다. 여기 살고있는 아이 학교 친구 엄마에 따르면, 저 천사모양 장식은 약 3년째 매번 똑같다고 하는데.... 내년에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ㅋㅋ


 사실 National Gallery는 제대로 둘러보려면 두시간, 세시간도 부족할 듯 보였다. 미술관 처음 와보는 초딩 아들 덕분에 아주 오랜 시간 머물지 못하고 유명한 작품 위주로 봐야만 했어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그러나 미술관을 나오며 나와 남편은 분명 미술에 문외한들인 우리가 배경지식이나 큰 설명없이 그림을 쳐다만 보고 있어도 느껴지는 즐거움이 분명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미술관 나들이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오늘을 첫걸음삼아 두번, 세번째 갔을 땐 좀 더 깊이있는 감상을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던 하루. 그리고 재밌으면서도 가끔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미술사 수업을 좀 더 열심히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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