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가 필요없는 도시
살면서 기회만 된다면 해보고 싶은 소소한 일들을 적어놓은 목록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스타벅스 시티컵을 모아보는 것이었다.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을테지만, 각 나라 도시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면 도시 특색이 잘 표현된 머그를 판매한다. 막 결혼을 했을때만 해도 그저 컵일 뿐일 물건을 굳이 살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했던터라 신혼여행지에서 스타벅스를 여러번 갔지만 시티컵을 사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야 그만큼 많이 사올 수 있으니 '수집품' 이 될수 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내겐 몇년에 한번 겨우 갈수 있을까 말까 한 해외여행인데 그 티끌같은 것들을 사와봐야 뭐하겠나(ㅋㅋ) 하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러나 여행의 기회가 훨씬 많아진 지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외로 여행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기념품의 힘은 크다는 걸 알게되면서부터 첫 여행지인 로마에서 반드시 시티컵을 사오겠다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출국했다.
로마에 도착해서 3박 4일 내내 여기저기 다니며 틈만나면 눈으로, 지도 어플로 스타벅스를 검색했는데 결론적으로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로마의 관광코스 그 어디에도 스타벅스는 없었다. 찾아보니 밀라노에 큰 스타벅스가 하나 있고, 2021년 초에 드디어 로마에도 하나가 생겼다는 기사는 봤지만 우리가 못찾은건지 어쨌든 돌아오는 그날 공항에서까지도 스타벅스는 찾지 못했다. 서울 안에서야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스타벅스이고, 영국도 스타벅스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로마에도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다.
로마에서 볼 수 없는 세가지 프랜차이즈가 있다고 하는데 그 세가지는 바로 "스타벅스, 피자헛, 베스킨라빈스" 다.
비록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여행하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 커피와 피자, 젤라또가 빠진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것이 새삼 생각나면서 로마의 음식문화를 저 문장만큼 축약해 설명할 다른 문장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가 없다는 건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풍문으로 로마 커피가 맛있다는 소리는 이미 들었기에 커피가 없으면 하루도 기운을 못차리는 ㅋㅋ 우리 부부는 로마 커피맛을 기대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사실 영국 커피는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라고 생각하며 지내는 터라(게다가 가격도 비싸다 ㅠㅠ) 로마에서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는구나 생각했다. 1유로 ~ 1유로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에 카푸치노를 마실 수 있으니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같은 사람에겐 진짜 천국같은 곳... 이건 좀 허름한 가게든지 꽤 넓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카페든지 커피 가격만큼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오히려 아이가 시킨 오렌지주스나 물, 탄산음료들을 커피보다 더 비싸게 판매한다.
(로마 3대 커피맛집이라 불리는 '타짜도르'의 커피)
판테온을 보고 지나가다 3대 커피맛집 중 하나인 'Tazza D'Oro(타짜도르)' 가 가까이 있다기에 들렀다. 3대 맛집이 아닌 곳의 커피와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카푸치노와 아이스 에스프레소 콘빠냐를 시켰는데 개인적으로 저 콘파냐는 맛있었지만 카푸치노는 다른 일반 카페의 커피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로마 어디든 커피는 다 맛있다는 결론. 오히려 가격만 더 비싸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여 그 후에 다른 커피맛집을 일부러 찾아가진 않았다.
커피가 어른들의 즐거움이라면, 젤라또는 아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 여행메이트였다. 출발 전부터 젤라또타령을 늘어놨던 아들을 위해 유명한 젤라또 가게를 찾았다. '지올리띠' 라는 이름난 젤라또집인데 맛집답게 줄이 바깥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줄이 길었으나 젤라또 가게 특성상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주문할 수 있었다. 미리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들고 가서 젤라또를 받아오는 시스템. 아이스크림 두 스쿱에 2.8 유로 정도였는데 영국 물가가 워낙 비싸서 그런지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건 그저 기분탓이겠지....
지인이 추천했던 쌀 젤라또와 카푸치노 젤라또. 쌀 젤라또는 사실 다른 가게에서는 한번도 못봤다. 그리 달지 않으면서도 쌀처럼 뭔가 씹히는 맛이 정말 특이했다. 기온도 꽤 오른 날씨라 더 맛있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보다 쨍쨍하고 더운 느낌이 나는 로마여서 젤라또가 더 대표적인 디저트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3박 4일동안 매일 1일 1젤라또를 했는데 여기 말고도 바티칸 근처의 "올드브릿지" 도 굉장히 맛있었다. 하루는 그냥 숙소 근처의 젤라또 가게에서 먹어봤는데 사실 거기도 맛은 있었다. 다만 제일 쫀득하면서도 그리 달지 않고, 특색있었던 젤라또는 여기 "지올리띠" 젤라또였다.
여행 내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던 피자. 이탈리아 왕비 마르게리따의 이름이 붙여진 마르게리따 피자는 거의 매일 한끼 정도는 먹었던 음식이었다. 평소에도 피자를 잘 먹는 아들은 우리가 놀랄만큼 3일 내내 피자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도우가 얇아서 먹는데 부담도 없고 가격도 크게 부담이 없는, 우리에겐 훌륭한 식사였다.
(번외로, 파스타도 정말 훌륭했다. 어느집이든 다 특색이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면은 하나도 불지 않은 채로 나왔다.)
가기전엔 로마에 간다고 매번 이탈리아 음식을 먹기엔 부담스럽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막상 와보니 여행 시간에 쫓겨, 혹은 너무 걷다 다른곳을 찾아가기 힘들다는 이유로 눈에 잘 띄는 식당을 찾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확률적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많이 방문했는데 3박 4일동안 질리는 느낌 없이 매 식사는 늘 맛있고 행복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로마의 음식들을 먹고 마시면서, 스타벅스와 피자헛, 베스킨라빈스가 이 도시에 왜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와 피자, 젤라또는 과연 그 명성다웠다. 여행은 보고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는데 그 말이 딱 실감나는 로마여행이었다. 물론 영국음식이 대체로 맛없는 편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