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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y 24. 2022

바티칸, 그 빛과 그림자.

지구에서 가장 좁은 나라, 바티칸에서.

 이전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나는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나마 영국의 분위기 덕분에 이제 막 관심이 생긴 상태인데 그런 나에게도 꼭 한번 보고싶었던 그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외계인과 인간이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이티' 의 그 장면은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하던데 그림 왕초보 문외한인 나도 알고 있는 '천지창조' 는 로마 안, 가장 좁은 국가로 불리는 바티칸에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바티칸은 로마여행을 기대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알고보니 '천지창조' 란 꼭 그 그림 하나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며, 일반 회화 그림이 아닌 '프레스코', 즉 천장화였다는 사실도 여행을 준비하면서야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관람 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천장화를 꼭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이상한 집념을 내 안에 불러 일으켰다. 여행 하루 일정을 아예 바티칸으로 잡고 '바티칸 뮤지엄' 입장 예약을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이미 입장권은 매진이었다. 그리 촉박하게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는데 매진이라니.. 4월 뿐 아니라 이미 꽤 오랜 기간 후의 표도 다 매진된 상태였다.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타나 대성당으로 가려면 바티칸 뮤지엄을 통해 입장해야하는데... 이번엔 로마에 가도 천지창조는 못보는 건가 싶었으나 출발 며칠 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도 표를 구매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줄을 서야 하지만 말이다.


 로마 둘째날, 입장 최소 한시간 전에는 줄을 서야 그나마 빨리 들어갈 수 있다기에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빠른 이동이 가능한 택시를 잡아탔다. 이탈리아에 대한 하도 많은 정보(?)들을 들었던터라, 이 택시가 정당한 값만 받고 우리를 바티칸으로 데려다 줄 것인가 의심했지만 다행히 택시는 오히려 지름길로 가며 미터기에 찍힌 적절한 값으로 우리를 바티칸 뮤지엄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려서 보니, 왜 표가 그리 일찍 매진되었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줄을 서려고 이동하는 중에 투어를 가장한 여러 암표상들이 흥정을 해왔다. 여행사에서 미리 표를 한꺼번에 사두니 나처럼 가이드 투어 없이 입장권을 미리 예매하기란 꽤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투어와 함께 입장하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기에 가격을 물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불렀다. 아침 일찍 움직인 덕분인지 막상 입구 앞의 줄이 그리 길어 보이지도 않았기에 오기가 생겨 암표를 거절하고 우리 가족도 줄을 섰다.

이렇게 기다려보는 것도 여행의 매력이라고 알려주었는데, 진짜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생각보다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고 기다림을 잘 견뎌주었다. 물론 좀 서 있더니 저렇게 바닥에 철퍼덕 앉긴 했지만 ㅋㅋ

줄이 조금씩 줄어드는가 싶더니 기다린지 한시간이 조금 넘어서자 드디어 우리가 입장할 차례가 되었다. 암표를 사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기다림이 길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마 설레임 때문이겠지. 들어가서 표를 사고 아이에겐 한국어가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도 하나 빌려 주었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니 왜 바티칸 뮤지엄 투어는 체력전이라는 말이 있는지 바로 느낌이 왔다. 넓디 넓은 박물관 한 가운데서 어디를 먼저 봐야하나 고민하다 음성가이드의 동선에 따라 '회화관' 부터 먼저 보기로 했다. 

라오콘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앞에 있던 성당인 '산타마레나 마조레 대성당' 근처 포도밭에서 1506년 발견된 이 라오콘을 교황이 사들인 후 이것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사실상 시작된 '바티칸 뮤지엄'. 그러니까 이 바티칸 뮤지엄은 교황 대대로의 개인 소장품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곳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가장 감동했던 그림.. 나다나엘의 저 눈과 시선을 맞추며 예수님의 수난과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바티칸 뮤지엄 특성상 대부분의 회화는 종교와 관련된 것이었다. 바티칸 투어가 은근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특히 종교가 없으신 분들에게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개신교 신자이기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알아보기도 하고, 사도가 나오면 반가워하기도 하면서 그림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보았다. 관심분야인 종교화를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처음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나 하는 마음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그림이 나올때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는데 이것이 이심전심인지....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가 바티칸을 갔던 그 주는 바로 "고난주간" 이기도 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솔방울 정원

회화관만 보았는데도 약 두시간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뮤지엄에서 빌린 오디오가이드가 꽤 괜찮아서 아이도 생각보다 진지하게 관람했지만 초딩 아이에게 더 이상의 관람은 무리였다. 바깥의 솔방을 정원을 잠시 보고, 뮤지엄 안에 있는 푸드코드에서 간단히 점심도 먹고 휴식한 후 관람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시한번 가이드 투어를 하지 않은 게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바깥의 음식만 못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으나 기대치가 없어서였는지 지하 푸드코드의 피자는 양도 푸짐하고 맛도 있었다. 

바티칸 뮤지엄의 또 다른 스타, 아테네 학당

바티칸 뮤지엄은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가 합쳐져 있는데, 여러 방들을 지나 드디어 '라파엘로의 방' 에 도착했다. 여기엔 바티칸 뮤지엄의 또 다른 스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이 있는 곳이다. 한국인에겐 인증샷 맛집(?)으로 불리기도 하는 게 저렇게 바티칸 뮤지엄 입장권과 그림을 잘 맞추면 훌륭한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기 떄문이다.ㅋㅋ (나는 원래 사진을 워낙 못찍는 편인데다,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저게 최선이었음....)

54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 '아폴로 학당'은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의 얼굴이 모티브가 되어 그려져서 더 흥미로웠다. 오른쪽 한 귀퉁이에 라파엘로의 얼굴도 빼꼼 보인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책에서도 봤고, 심지어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 벽에도 이 그림이 있지만 설명을 들으며 뭔가 알고 보는 것과 그냥 쓱 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명성답게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빽빽했는데 흥미롭게도 그들도 나와 같이 이 그림의 숨은 묘미를 찾으며 즐거워하는 얼굴이라 다들 같은 마음으로 이 그림을 보고 있구나 하는 동질감마저 들었다. 




드디어 바티칸 뮤지엄의 하이라이트. 여기에 온 이유인 '천지창조' 를 보기위해 시스타나 대성당으로 들어섰다. 바티칸에 다녀온 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예배당 입구를 들어서며 느꼈던 압도감을 잊지 못한다. 입구 바로 옆쪽 벽 전체엔 근육질 예수님이 그려진 '최후의 심판' 이 있고, 천장에는 천지창조의 과정들과 노아의 이야기들이 중앙에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천지창조' 다. 천지창조를 중심으로 양쪽 끝에는 선지자들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천장에서 잠시 눈을 밑으로 내려보면 양쪽 벽에는 예수님과 모세의 생애가 표현된 그림들이 그야말로 빼곡히 천장과 벽을 채우고 있어서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요즘처럼 물과 물감만 있으면 쓱쓱 그릴 수 있는 수채화 작품도 아닌데다, 고개를 들고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목이 부러진다 아우성을 치는데 여기에다 회반죽을 사용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채색해야 하는 천장화를 이토록 생동감 있게 그리다니.. 천재 예술가는 정말 타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가 이 천장화를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3년 여 정도였는데 이 작업으로 척추가 휘는 등 건강이 극도로 안좋아졌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작품을 탄생시켰으니 고생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구나 혼자 멋대로 생각해본다.

오후 4시쯤 뮤지엄 밖으로 나오니 입장 줄이 끝도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침 일찍 오길 잘했다!



 

 바티칸에 오면 관광객들이 필수로 들리는 곳은 바티칸 뮤지엄 외에 또 한 곳이 더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이 그곳인데, 바티칸 뮤지엄을 보았던 토요일엔 다음날 있을 부활절 행사 때문인지 일찍 문을 닫아버려 못가고 대신 영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성베드로 대성당만 따로 방문했다. 이번에도 아침 일찍 방문한데다, 월요일이라는 요일의 특수성 때문인지 전혀 기다림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른아침 성 베드로 대성당 건물. 

사실 성 베드로 대성당 하나 보려고 바티칸을 또 와야할지 남편과 의견교환을 많이 했는데, 내가 천지창조를 보고 싶었던 것처럼, 남편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이 보고 싶다고 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안의 '피에타'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워낙 유명해 일반적으로 '피에타' 하면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가르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예전에 조각상이 파손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관람이 가능했지만, 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리아의 옷의 주름이며 표정이며 축 늘어진 예수님을 조각으로 어찌 저리 완벽하게 표현했을지 천지창조에 이어 역시 이 사람은 천재였어! 하는 확신을 더해주었던 조각상. 저 앞에 서서 또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비교적 입구 앞쪽에 있던 피에타 조각상을 지나 성당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시작했지만...사실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던 것은 피에타 앞이 마지막이었다. 첫날 보았던 판테온의 천장에 있던 금 장식들이 여기 성당 건축을 위해 다 사용되었다고 했는데 왜 거기있는 금까지 끌어다 건축했는지 짐작이 갔던 곳곳의 순금들과베드로 의자, 성당 한 가운데 자리잡은 발다키노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기엔 너무 화려하게 느껴졌다. 

베드로 조각상

'열쇠'를 들고있는 베드로 조각상. 예전에 성당을 방문한 신자들이 하도 발을 만져서 동상 오른쪽 발이 닳아 없어질 것처럼 반들반들하다는 그 베드로 조각상이다. 성경에 있는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 하는 구절에서 비롯된 듯한 저 열쇠는 바티칸에서 꽤 중요한 의미인 듯 보였다. 베드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열쇠만 들고 있으면 무조건 베드로구나 생각하면 틀림없었고, 심지어 바티칸 뮤지엄에는 '베드로의 열쇠' 라며 열쇠모양을 가진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성경의 '열쇠' 가 진짜 저 쇳덩어리의 '열쇠'의 의미가 아닐 뿐더러 마치 오래전 교황청이 팔았던 면죄부 같은 느낌이 들어 어쩐지 좀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보이는 바티칸의 거리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전망대에 오르면 바티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마치 열쇠 구멍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전망대에 오르지 못한게 조금 아쉽긴 했다. 

바티칸은 하루 그 이상의 시간동안 머물러도 아깝지 않을만큼 참 좋았다. 곳곳에서 흔히 보이던 신부님과 수녀님들, 성당 구석구석 조용히 기도하던 신자들...어쨌든 도시 전체가 뭔가 성스러운 분위기라 (비록 보이는 것만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속적인 세상의 분위기와 구별된 곳 같은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고난주간에 맞춰 방문한 바티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고난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보았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천지창조' 를 보며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바티칸에서의 모든 일정은 이렇게 우리들의 신앙과 연결되었다. 그래서 더 잊지 못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세속화 된 종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건 그저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너무나도 화려하고 멋진 베드로 대성당과 수많은 바티칸 뮤지엄의 작품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크고 높은 교회의 건물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싶어 한편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상 속의 소금과 빛으로의 역활을 감당하며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신자인 우리들의 소명이 아닐까...다시 한번 내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체력전' 이라는 바티칸의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몸은 피곤했지만 머리와 마음은 뭔가로 가득 채워져 정신이 또렷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저녁이었다. 
다음날은 드디어 콜로세움을 간다. 여기에선 또 어떤 로마를 발견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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